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경 emb Apr 18. 2024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2

언니네 이발관 - 혼자 추는 춤


휴지를 다섯 장쯤 뽑아 주며 귀 기울여 듣던 의사 선생님은 우선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마음은 몸과 달라요. 아픈지 아닌지, 우선 스스로 질문해 봅시다. 다만 스트레스가 몸에 나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으니 자율신경계 검사란 걸 해봐요."


나는 긴가민가했기에, 다시 물었다.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전 우울증까진 아닌 것 같아요. 그저 몸이 쳐지고, 힘들 뿐 아닐까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을 게 분명해요."


"그러면 너무 다행인거죠. 일단 검사를 해봅시다."


백여 개의 설문에 답했다. 설문지는 내 예상과 조금 달랐다.

죽고 싶은지, 우울한 지를 묻는 질문 말고도 이런 문항들이 있었고, 나는 '매우 그러하다'에 상당히 많이 동그라미를 쳤다.


-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합니까?

-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불안합니까?

- 기력이 없고 방청소를 하지 못합니까?

-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간이 가버린 적이 있습니까?

- 일의 효율이 떨어졌습니까?

- 씻거나 걷는 게 힘이 듭니까?


자율신경계 검사란 건 사지에 전극을 연결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 거였다. 팔과 다리를 부여잡은 집게를 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멍하다 - 는 건 감정이었다. 나는 분명히, 멍하게 2-3주를 보냈다.



결과가 나왔다. 의지의 문제라 생각했던 건 병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 불안증에 동그라미를 쳤다.

중증의 우울증과 그보다 심한 불안증. 불안증이 우울을 가리고 있어서 우울보단 '남을 의식'하는 감정이 더 많을 거라고 설명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진 한 적은 없지만, 세상에 내가 더이상 쓸모가 없다는 생각은 자주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라져도 세상은 잘 돌아갈 거란 게 당연한 이치처럼 느껴졌다.


평균보다 훌쩍 늘어 있는 나의 불안과 우울 지표. 안정적인 오각형에서 벗어나 비쭉비쭉 제멋대로인 자율신경계 검사지를 봤을 때 든 첫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내 몸은 망가져 있구나. 내 마음이 아프구나. 착각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


"병원에 오신 것부터 치료의 시작이에요. 너무 잘 오셨고, 대단합니다."


그 안도감마저 우울증 환자들이 겪는 대부분의 증상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의사 선생님은 짧게는 3개월, 길면 6개월 동안의 치료를 제안했다.

그렇게나 길어요? 나는 놀라 되물었고 의사는 답했다.

나의 마음엔 지금 불이 붙었다고. 불을 낸 담배꽁초부터 제거한 다음엔 산을 모두 태워버리는 불을 완전히 꺼야 한다고. 


"일단 약을 드셔보시죠. 일주일 후에 다시 뵙고 이야기 나눠요."


정신과 약은 병원에서 바로 제조해 준다는 걸 처음 알았다. 치료비는 예상만큼 비싸진 않았다.

4만 원 남짓한 돈을 내고 약봉지를 어색하게 쥔 채 병원을 나왔다.

날은 맑았고 가슴은 흐린 안개 같았다.



-계속-



왜 이 따위니 인생이 그지?
그래서 뭐 난 행복해
난 아무것도 아냐
원래 의미 없이 숨쉴 뿐이야



나는 매일 춤을 추지 혼자
그래서 뭐 난 괜찮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그저
하루 하루 견딜 뿐이야


난 아무것도 아냐 원래

그래서 뭐 난 행복해

근데 미치겠어 너흰 왜

늘 그런 썩은 눈으로

사람을 쳐다보는거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