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경 emb Jan 13. 2023

구설수에 휘말려도 네 잘못이 아니야

자우림 - Girl talk


  유난히 구설수가 많다.


 중학교 2학년 때, 독서실 앞에서 친구와 머리끄댕이를 붙들고 싸웠다. 상스러운 욕과 고성이 오갔는데, 사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친구와는 여전히 연락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는 하지도 않은 열애설에 휩싸였다. 친한 친구는 한 학년 위인 남자친구를 쥐 잡듯 잡았다.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의 절친한 친구였던 나에게 대신 하소연을 하며 조언을 구했다. 잦은 연락을, 친한 친구는 '바람'이라고 치부했다. 반에서 목소리 큰 아이들이 나서서 친한 친구의 편을 들었다. 나는 어렸기에, 대처할 방법은 모른 채 상처만 받았다.


 대학교 몇 년은 동아리에서 보냈다. 지금은 뿔뿔히 흩어진 그들에게 나는 참 많은 시간을 바쳤다. 당시 어떤 선배를 만났다. 사실상 첫 연애였다. 같은 동아리에 그 선배의 전 여자친구가 있었다. 사귀고 나서야 알았다. 전 여자친구는 결별을 요구했고, 나는 잠시 헤어졌다가 재결합했다. 계속 헤어진 줄 알았던 그녀는 나에게 급격히 친절해졌는데, 도저히 말할 용기가 생기지 않고 또 그 호의가 그저 좋아서 가만히 묵인했다. 미숙하고 어리석었던 대가는 컸다. 얼마 후, 전후사정을 다 알게 된 전 여자친구는 지인들을 동원해 나를 따돌렸다. 도망치듯 쫓겨나듯 동아리를 떠났다.


 취업을 했다. 신입사원 6개월 기간 함께 잠을 설쳐가며 구른 동기들은 형제 같았다. 전우애를 나눴으니 늘 옆에 있을 거라 생각해 오히려 소홀했다. 맞지 않은 부분도 많았는데, 그런 감정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굳이 맞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족과 형제는 보통 그랬으니까. 전우는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은 누구보다도 남이었던 이들이었다. 다른 회사로 옮기자 동기들은 모두 등을 돌렸다. 나에게 유독 냉랭한 그들이, 다른 이직자에게는 여전히 친근하게 대하는 걸 보며 여전히 미숙했다는 걸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구설수는 어리고 서툴던 내가 만들었다.


  친구와 친구의 남자친구 중 소중한 사람을 꼽자면, 당연히 전자여야 했다. 친구를 험담하던 친구의 남자친구를 과감히 끊어내야 했다. 알량한 '착함병'에 걸려 그러지 못했다. 선배와 연애를 하기로 했다면, 선배의 전 여자친구와 관계를 이어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전 여자친구가 '헤어졌음'을 전제로 보낸 호의에 취해, 애초에 파탄날 관계를 잡으려고 바둥댄 건 어리석었다. 첫 회사 동기들이 정말로 형제같았다면 그들에게 나의 시간과 애정을 더 쏟아야 했다. 언제나 옆에 있는 관계 따위, 사회에선 절대 생기지 않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환상,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것이란 기대를 버려야 했다.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모두에게 사랑을 주지 않으니 당연한 귀결인데도, 나도 모르게 모두의 호의를 갈구하고 있었다. 날 싫어하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했다. 예수조차도 미움을 받아 못박혀 죽었다. 이 부분을 인정해야 했다.


  모든 관계는 순서가 있다. 모두를 좋아할 수 없으니,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사람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내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야 했다. 대신 나를 호의적으로 보는 이들에겐 나 역시 진심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관계의 계산은 정확해서, 노력과 시간 없이 거저 얻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이들은 바로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험담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에게 돌아오면 난 늘 앓아 누웠다.


  시간이 지나 30대에 접어든 지금 생각해보니 인생에서 가장 불필요한 고통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미움에 상처를 받으면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 하던 시기, 나의 부족함만을 탓하며 끊임없이 자학을 일삼았던 20대의 숱한 시간이 나는 조금 아깝다.


  지금도 상처를 받는다. 어디선가 나에 대한 험담을 들으면 무너지고, 가슴에 못이 박혀 아프다. 다만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된 지금은, 패인 상처를 방치해 곪아 터지는 대신, 바로 딱지를 앉게 하는 정도의 방어력은 갖추게 됐다.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면 됐다. 이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아끼며 내 세계를 유지시키자.


  비틀거리며 걷는 인생에 구설수는 끊이질 않을 거다. 욕을 먹게 되는 건 어쨌거나, 상당부분 나의 행동에서 시작될 테다. 내가 만들고 내 선택이지만 확실한 건, 내 잘못은 아니다.


  이제는 울타리 밖 이들에게서 욕설이 난무할지라도 고개는 숙이지 말자. 조금만 눈을 떠보면 울타리 안 작은 풀밭 가득 찬 내 사람들이 날 지켜내주고 있을 거다.


  시인 이상이, 애인과 외국으로 도피한 여동생에게 남긴 편지에 적었듯,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너는 반짝이는 작은 별

아직은 높이 뜨지않은

생이 네게 열어줄 길은

혼란해도 아름다울거야

수많은 사람들과 넌 만나게될거야

사랑도 미움도 널 더욱 자라게할거야

마음 안에 분노도 불안도

그저 내버려두면 넘쳐 흘러갈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