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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Mar 26. 2018

경주

Ignito-Lost Chronicle(Feat.E-sens)

경주 문무대왕릉


17년 2월 24일부터 2월 26일까지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아주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하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심신이 지쳐 어느 날 훌쩍 떠났다. 별 걱정 없이 이박 삼일을 여유롭게 다녔다.

경주는 언제나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초등학교 시절, 높은 건물이 없던 도시의 기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그렇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하늘을 가리지 않던 그 건물들이 과거라는 시간에 대한 하나의 예의처럼 비추어졌다.


그래서 신기했다. 과거에 대해 현재가 예의를 차린다는 부분이 경이롭게도 매력적이었다. 시간이 마주치는 부분들은 언제나 그랬으니까.


여행 둘째날.

운이 좋아 문무대왕릉까지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氣)가 센 곳이라고 했다.


십여 명의 무당들이 그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자갈바닥에 돼지 머리뼈가 굴러다녔다. 살이 남아 있는 돼지 머리뼈는 갈매기들의 소소한 한 끼가 되었다. 문무대왕릉을 몇 바퀴나 도는 배 한척이 바다에 있었다. 파도에 잔잔히 흔들리는 배 위에선 한 무당이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그 곳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문무대왕릉도 바다라고, 근처에는 횟집이 드문드문 있었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죽여 회를 떠서 파는 횟집은 동시에 방생(放生)용 물고기를 같은 수조에 담아 팔았다. 그러니까 죽어야 하는 물고기와 살아야 하는 물고기가 뒤섞여 한 수조에서 헤엄쳤다.


죽은 전갱이를 말려 파는 생선가게 안 작은 방에서는 한바탕 굿판이 벌어졌다. 무엇이 그리들 간절한지 온 가족이 모인 굿판 앞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절을 했다.

신이 강림하길 바라는 무당들은 일종의 수련인지, 곳곳에서 소소한 제사상을 차려놓고 북을 치며 신을 불렀다. 그들의 얼굴에 일말의 초조함이 깃들어 있는 듯 보여 마음이 조금 동했다.


주상절리까지 보고 난 후 숙소가 있는 경주 시내로 돌아왔다. 안압지와 첨성대, 불국사와 천마총, 교촌마을과 기타 등등의 많은 곳을 훑어보고 경주를 떠났다.

모든 여행지가 그렇듯 어릴 적 기억과 지금의 여행이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의 경주는 10여년 전 경주가 보여준 모습만큼이나 시간이 겹쳐 흐르는 장소였다. 
그것을 확인한 것 만으로도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여전히 경주는 매력적이고, 다시 가 볼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PS. 경주에 다녀온 직후 지금 다니고 있는 언론사의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나는 회사에 대한 욕을 달고 사는 훌륭한 직장인이 되었다.(2022년 덧붙임)




거친 바람결에 상처를 입고

낙오된 영혼들이 말하곤 했던 신기루를 바라보네

아마도 그건 영겁의 시간 한켠에 쓰러져가는

운명에 대한 가느다란 고뇌

고지가 아련히 눈앞에 어린밤

다가서려는 순간 먼지만이 아른거린다

형용할 수가 없는 설움이 치민 그 새벽

난 또 다시 떠나네 이미

그 곳은 잃어버린 땅

절망의 어딘가 자리했던 형체를 버린다

이미 무너진 삶

그 위로 깊게 뿌리 박힌채 황혼의 끝을 향해 손짓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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