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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Apr 12. 2023

밸런스 게임을 무너뜨리는 사람

안예은-Elope



"네 아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학교 폭력의 피해자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면, 어떤 걸 선택할래?"


드라마 '더 글로리'의 작가가 던졌다는 저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사실 조금 감탄했다. 밸런스 게임의 완성도는 사람을 얼마나 열받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도저히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내 앞에는 "꼭 하나를 골라야 해!" 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벌어지니까.


'가해자'와 '피해자'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저 상황은 아주 지랄맞다.

이 측면에서 이미 훌륭한 밸런스 게임이지만 내가 감탄까지 한 이유는, 이 짧은 질문의 대답을 통해 상대방의 가치관을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피해 입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과 내 자식이 개쓰레기가 아니길 바란다는 바람.

어느 것도 틀린 게 아니지만 선택한 답에서 가끔은, 갑자기 무보정 카메라에 찍힌 사진마냥 나도 모르는 나의 적나라한 생각과 마주하게 된다.

낯설거나 신기하거나 서늘하거나 뿌듯한 나의 무의식. 그걸 알고 싶어서, 이런 잘 만든 밸런스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다.




혼자 만든 밸런스 게임이 하나 있다. 감히 비슷한 완성도를 자부하며, 만나는 사람들 족족 물어보고 다니는 나의 질문은 이렇다.


"너의 유일한 자식이 3초 후에 태어나는데, 어떤 존재가 너에게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고 제안해. 첫 번째는 무척 영민하고 똑똑하며 재능이 넘쳐나지만 지극히 이기적이며 타인의 고통보단 자신의 안위가 중요한 아이야. 두 번째는 무엇을 해도 뒤떨어지며 둔하고 재능이 없지만 지극히 착하고 남의 고통을 지나치지 못하며 세상의 밝음을 믿는 아이야.

넌 누굴 택할래?"


질문을 받아든 사람들의 90%는 머리를 싸멘다. 신기하게도 답변은 꽤나 갈리고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래도 내 아이가 어디 가서 무시받고 살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부터, 그 정도로 둔하고 뒤떨어지면 결국은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는 걱정까지.

영민하고 똑똑하다면 이기심은 본인 손해라는 걸 교육할 수 있을 거란 희망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둔하고 재능이 없다고 해도 '내 자식'이니까 내가 어떻게든 먹여살릴 수 있다는 모성애와, 이기적인 자식은 결국 부모조차 버릴 거라는 감정 이입형 대답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리고 이 질문의 끝에는 만난 지 반 년쯤 된 A가 있다.





A는 신기한 아이였다. 세상에서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함과 어떻게든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아야 행복할 것 같다는 강박에 쌓인 나와는 확실히 달랐다.

A는 전문성이 보장되는 SKY 이공계 학과를 졸업했다. 해외에서 오래 살아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런 그는 현재 글 쓰고 편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주변 친구들이 다 전문직인 데다 본인 스스로도 억대 연봉을 벌 능력이 있으면서 왜 그 일을 하느냐고 어느 날 물었다.

그는 "행복하니까"라고 답했다.


평소에도 A는 "행복하다" 라는 말을 많이 한다.

길을 걷다가도 소소한 밥을 먹다가도 그는 "아 정말 좋다" 라던지 "지금 참 행복하다" 는 말을 툭 내뱉는다.

의심 많고 걱정 많고 속물적인 나는 늘 "뭐가 그렇게 행복하냐"고 되묻는데, 그럴 때마다 A는 오히려 또랑또랑한 눈으로 날 보며 "바람이 시원하잖아" 라던지 "순대국이 맛있잖아" "너랑 같이 있잖아"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낯간지러울 법하지만 이상하게도 A가 그런 말을 하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묘하게 진심인 것 같아서다.


A는 또 "즐겁다"는 단어를 좋아한다.

"세상은 참 재밌어. 내 삶도 그랬어.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는 더 즐거울 거야." 라는 식의 문장들.

벌어둔 돈이 있으면서도 여느 비슷한 나이대처럼 차를 사려 하거나 명품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금은 별로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거 산다고 즐거울 것 같지 않아." 그답게 명료한 이유였다.


그러니까 A는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넌 행복할 거야"라며 유혹하는 요소와는 전혀 다른 류로, 자신만의 분명한 행복과 즐거움이 있는 사람이다.


A의 말을 들으면 나는 이 척박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쟤가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에 저렇게 올바르고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느새 그의 옆에 조심스럽게 서서 같이 길을 걷게 된다.




A에게도 당연히 저 밸런스 게임을 들이댔다. "너는 어떤 걸 선택할 거야?"

보통 이 질문을 받아든 사람들은 짧으면 30초 길게는 5분 가까이 답을 고민한다. 밸런스 참 잘 맞는다는 투덜거림은 덤으로 따라오곤 했는데 이번에도 A는 달랐다.


"너무 쉽지 않아? 당연히 두 번째 아이를 골라야지."


여태까지 내 통계 수집에서 6:4의 비율로 첫 번째 아이가 더 높았다. 고민도 하지 않고 2초 만에 두 번째 아이를 고른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A의 답은 간결했고 그래서 잊기 힘들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면 안 돼."


그는 덧붙였다.

"아무리 똑똑하고 돈 벌어서 자기 혼자 살면 뭐 해. 남을 해치며 사는 건 올바르게 사는 것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아니야."


A의 명확한 기준 앞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빤히 바라봤다.

A의 눈은 언제나 그렇듯 참 맑았다.




A를 연인으로 만나기 전, 그러니까 그저 아는 사이었던 3년 전이 생각났다.


사람 만나는 게 일이다 보니 피상적인 인간 관계에 치어 살던 나는 그 때 "주변 사람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강박처럼 되뇌이며 살았다.

사실 쓸모 없는 사람이 되진 않아야 한다는 그 말의 뒤에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되면 혼자가 될 거란 공포가 깔려 있었다. 


"너에게 도움이 될게"라는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고맙다"라던지 "나도 그럴게" 혹은 "서로 도움을 주며 살자" "돕고 살아야지" 라고들 답했다.

당시 나는 그런 말에 위로를 받으며, 더 힘 내서 쓸모를 증명하겠다고 뿌듯하게 다짐하며 잠에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여의도에서 A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도 습관처럼 "너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뱉었다. 여의도 공원을 함께 가로질러 가던 길,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해질녁이었다.


그 때 A는 날 힐끗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는 쓸모 있을 필요가 없어. 노력할 필요도 없어. 네 주변 사람들은 너가 쓸모가 있어서 좋은 게 아냐. 그냥 너가 좋아서 네 친구 하는 거야. 나도 그렇고. 그냥 있으면 돼."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지. 아직도 그 날 A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A 덕분에 나는 그 날 신념으로까지 삼겠다던 저 문장을 가뿐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A와 함께 한 반 년동안 나는 많이 바뀌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 대신 한강변 노을와 찰랑이는 물결을 보며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법을 익혔다.

내 업무에 대한 자괴감과 자학을 많이 내려놓고 일할 때의 즐거움을 찾아냈다.

돈을 벌어 명품을 사고 십수만 원의 코스 요리를 먹어야 행복한 줄 알았던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행복보단 A와 함께 웃고 일상을 공유하며 느끼는 감정이 훨씬 오래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밸런스 게임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 있는 내 주변의 유일한 사람, A.


그와 함께 하는 삶은 무척이나 즐겁고 맑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그의 손을 조용히 잡고, 심장에서 들려오는 행복의 소리를 콩콩 함께 들어본다.





"길은 닫혀있어 나갈 곳은 없어
완전히 갇혀 있는 걸
숨 쉴 수 없어 웃을 수도 없어
남은 건 절망뿐인 걸
짙은 어둠 속 아무도 없는 곳
내게 다가온 마지막 구원이

그대와 함께라면 어디든 천국인걸
두 눈을 감고서 이제 날아


우리 함께 걸으면 어디든 꽃길인걸
내 손을 잡고서 이제 날아

Fly away to the star
아무도 우릴 모르게
Fly away to the star
아무도 우릴 못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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