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경 emb Nov 01. 2018

애인의 향수

자우림-스물다섯 스물하나


만원 지하철을 타거나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 가끔 깜짝 놀란다. 스파이시하지만 약간은 몽환적이고 굉장히 짙은 머스크향을 나는 기억한다.


스무살이 되기 직전 만난 전 애인은 그 향수를 무척 좋아했다. 어딘가에서 추천받은 후 줄곧 이 향만 써왔다는 애인은 다양한 색의 가디건을 입었지만, 가디건마다 온통 그 향이 배겨 있었다.

나는 때로 어깨에 코를 박고 살과 향수 냄새가 섞인 향을 맡으며 웃었다.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느낄 수 있는 전 애인을 나는 좋아했고 전 애인이 좋아 그 향수를 사랑했다.


전 애인은 스무살 중반쯤에 떠났다. 우리는 많이 싸우진 않았지만 조금씩 지쳤고 또 서로를 힘들게 했다.

아홉살의 나이를 극복하지 못해 후회가 많았던 어느 저녁날 나는 조금 울었다. 


그 후 애인들은 생겼다 사라졌다. 향수 냄새가 좋았던 열아홉의 애인은 겹겹이 쌓여가는 애인들 속 이제 이름도 갸웃거릴 정도로 희미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 향은 더욱 선연히 남았다. 희미하지만 절대 사라지진 않게, 기억의 마지막 지분을 향수는 꽉 쥐고 놓질 않았다.


이름도 브랜드도 모르는 이 향을 난 여전히 사랑한다.

누군가의 살에 코를 부비대던 기억과, 춥지도 않은데 굳이 가디건을 뺏어입고 환하게 웃어대던 기억을 사랑한다.

이젠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너를 나는 꽤나 좋아했었다고, 그 시간 덕분에 열아홉과 스물을 가로지르는 추억이 생겼다고, 나는 지금 너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추억만큼은 계속 사랑할 거라고.

그 말을 하고 싶어 향이 퍼져나간 만원 지하철을 두리번거린다.


오륙 년간 옛 애인은커녕 향의 주인을 찾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찾지 못했고, 제대로 찾지 않았다.

가끔씩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도록 놔두고 싶다.

그래야만 하는 향이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너의 목소리도 너의 눈동자도

애틋하던 너의 체온마저도

기억해내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데

흩어지는 널 붙잡을 수 없어.


이전 15화 밸런스 게임을 무너뜨리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