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Christ Superstar-Gethsemane(겟세마네)
어떤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
남겨진 사람들의 세계는 산산히 부서진다.
그러나 죽음 밖에 있는 사람들의 세상은 잔인할 정도로 평온하다.
남겨진 사람들은 또 한번 지옥에 떨어진다.
"그럼, 이틀 후 이태원에서 뵈면 될까요? 네, 전 미리 가 있을 거니 걱정 마시고요. 네, 그 때 뵙겠습니다."
그 아버지는 침착했다. 침착해서 당황한 건 나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전혀 가늠할 수 없어서 벌벌 떨며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인터뷰 장소와 시간을 먼저 제안했다. 때로는 웃었다.
이게 뭐지 싶은 감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틀 뒤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장녀를 잃은 지 100일이 되어 가는 아버지 C는 투명한 비닐봉지 한가득 딸의 유품을 담아 왔다.
흙투성이가 된 속옷과 피 묻은 스웨터, 밟히고 구겨진 흰 캔버스화가 눈 앞에 가지런히 놓였다.
함께 딸을 잃은 어머니는 옆에서 조용히 유품을 펼친 뒤 "차라도 좀 차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여기가 참 대접할 데가 마땅치도 않은데 위치가 좋아요."
기껏해야 두 평이나 될까 싶은,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옆 유가족 쉼터라 이름붙여진 천막 안에서 어머니는 웃었다.
딸은 독립해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C는 2022년 10월 30일 새벽 오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서야 딸이 죽은 줄 알게 됐다.
"딸의 방에 갔는데 통장이 하나 있더라고요. 돈을 꽤 많이 모아 놨더라고. 유학 가려고.
대학 일찍 졸업하고 일하는 게 아쉬워서 대학원을 알아보고 있었던 거야.
월급 쪼개서 그거 넣고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연금적금도 들고, 평생 저축 안하고 살 줄 알았더니 잘 모으며 살고 있더라고요.
이 모든 걸 딸이 없어지고 나서야 알았어."
10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C는 이 말을 하면서도 덤덤했다.
어머니는 펼쳐진 딸의 옷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100일을 앞두고 무엇이라도 기록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건 방송을 만드는 일. 주어진 시간은 길어봤자 3분.
그 3분을 최대한 사용해서라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압축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부모와 친척, 형제자매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를 나눠 유족을 섭외했다.
C는 그 중 '부모'를 담당하는 인터뷰이였다.
인터뷰는 40분 정도 진행됐다.
촬영기자의 인터뷰 스케치가 끝나갈 때쯤 침묵하던 C는 입을 뗐다.
"나는요, 평생 공무원으로 살았어요. 나라 일 하며 살았으니 국가를 어느 정도는 믿고 살았어.
그런데 참 후회되는 게 있어요. 2014년 그 때, 세월호가 가라앉았잖아.
애들 죽었으니 안타깝긴 한데 그게 다였어요. 사실 저 배가 어떻게 가라앉지 하는 신기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기도 해.
그 다음에는, 저 유족들은 왜 저럴까 생각했어. 그 사람들 욕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막상 당해보니 그게 아니었어.
갑자기 내 애가 죽었는데 아무것도 바뀐 게 없고 심지어 밝혀진 것도 없어. 나라는 우리 욕 먹게 하도록 작정한 것 같아.
겉으로만 난리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이에요.
내가 당해보니 너무 한이 쌓여서,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지금 다 말을 못 하겠어요.
그런데 난 과거에 왜 그랬을까? 그냥 안타까워하면 되잖아. 그 사람들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냥 그거면 됐는데, 왜 그렇게까지 날을 세웠을까. 왜 이리 무관심했을까.
우리도 그러면 어떻게 하지. 난 모든 게 너무 무서워요."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흐느낌이 시작됐다.
나는 조용히 C를 바라보며 이 발언을 나중에 꼭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짧게 메모했다.
방송사 보도국의 사건팀 기자로 일하며 크고 작은 죽음을 매일같이 접한다.
내가 만나는 죽음은 뉴스가 될 만한 것이어야 하기에 평온한 죽음은 드물고 늘 갑작스럽다.
그럴 때 만나는 유족들의 눈은 대개 텅 비어 있었다.
우주를 잃은 그 눈으로 하는 말은 C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정말 몰랐어요. 뉴스에서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어. 우리 일이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 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질 걸.
대책 마련이나 처벌 강화 같은 얘기 나올 때 조금 더 관심 갖고 힘 실어 줄걸. 난 남의 일인 줄 알고..."
어느 날 음주운전에 희생된 아이의 유가족을 만나서 들었던 말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게다가 본능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사람들을 나는 너무 많이 봐 왔다.
대형 참사가 터지면 대중과 익명성에 숨은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잔인해진다.
"적당히 좀 하지" "장례까지 치렀으면서 뭘" "애들 죽음 팔아서 장사하고 있네" 같은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들.
그들에게 '남의 일'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들 역시 기어코 '내 일'이 되어야지만 고통을 아는걸까.
몸서리처지는 세상이지만 나는 그래도 아직 세상의 따듯함을 믿어보고 싶다.
놀랍게도 세상에는 '남의 일'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바뀔 수 있는 게 정말 많다.
아직 수많은 부조리와 부당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부당함에 깔아 뭉개진 희생자와 유족도 있지만, 이런 사안들은 여론의 관심을 받지 못해 물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 한다.
아무리 기사를 써내도, 아무리 논리적으로 잘못을 지적해도,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 기사가 되어 사장되는 경험을 난 참 많이 했다.
예를 들면 이제 막 여론이 쏠리는 음주운전 사고나 노후 교량의 안전 문제, 공사 현장의 N차 하청 문제 같은 것들.
나의 관심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꽤 남는 장사가 아닐까.
이미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의 또 다른 무고한 희생을 막는 세상이 되길 원한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이태원 참사 100일의 기사를 썼지만,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진 못 했다.
"죽어서 난 무엇이 되나
죽어서 난 무엇을 얻나
I'd have to know I'd have to know my Lord
I'd have to know I'd have to know my Lord
Why should I die? 왜 죽나요 내가 왜
보여줘요 내 죽음이 갖게 될 의미
알려줘요 내 죽음이 갖게 될 영광
헛된 죽음 아니란 걸 보여줘 제발
난 거부조차 할 수 없는 존잰가요 왜
좋아요 죽을게요
See how I die
See how I 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