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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Jun 13. 2023

자신은 없어도 잘 들어 볼게요

이랑 - 잘 듣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화를 냈다.

"세상이 시팔, 나라가 해주는 것 단 하나도 없으면서,"


1초 만에 전형적인 진상임을 알아챌 수 있는 첫 마디.

그렇다고 무턱대고 전화를 끊어버릴 수는 없었다.

"선생님, 이해 되게 말해 보세요."

"시팔, 내가 기초수급자로 살면서 정말 너무 힘든데 주민센터를 찾아갔더니 나보고 기다리래잖아…."




방송국 보도국에 있다 보면 자주 제보 전화를 받는다.

이메일, 카카오톡, 라인, 트위터, 페이스북, 심지어 인스타그램으로도 뉴스 제보를 할 수 있는 2020년대.

누가 유선 전화로 제보를 하나 싶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아직 (신기하게도) 전화라는 전통적인 제보 수단을 신뢰한다.


생각 외로 장난전화는 거의 없다. 그러나 소위 '얘기가 되는' 제보도 드물다.

그러니까 제보 전화를 거는 대부분은 진지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왜 이런 걸 제보하는지 모를 물음표만 둥둥 떠다니는 경우가, 장담하는데 90% 이상이다.



"그러니까 선생님 이야기하시고 싶은 게 뭔데요?"

"내가 말이야 아가씨, 기초생활 수급자로 벌써 10년이 넘게 살고 있어."

"(아가씨라니...)네 그런데 주민센터를 가셨다면서요."

"내가 30년 전인 1982년에 다리를 크게 다쳤어. 녹번동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떨어졌는데 그 때 나간 관절이 아직도 돌아오지가 않아서…."



여기까지 듣다 보면 다음에 어떤 흐름의 대화가 이어질 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 때 오야지 하던 형님이 그나마 돈 조금 쥐어주어서 병원에는 한두 번 갔는데 관절까진 못 잡아냈단 말야, 그 때 뼈는 낫게 해준다고 형님이 괴기 넣은 소 뼛국도 챙겨먹고 쐬주랑... 형님들이 되게 좋았어. 그런데 지금은 연락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내가 힘들어서, 도와달라고 할 때가 국가밖에 없잖아? 그리고 내가 말야, 그냥 국가가 이렇게 취급하면 안 돼. 그 전에는 군대에도 갔었어 내가, 그때 나이가 20대였는데 XX사단에서 내가 정말 중요한 역할이었단 말야…."


이 때부터는 방법이 없다. 네네 답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저 조용히 수화기를 옆에 내려놓고 다시 내 일에 집중할 수밖에.




지난 철야 근무 땐 울다 지쳐 목이 메인 한 아주머니가 새벽 세 시에 전화를 걸어 왔다.

"옛날에...남양주의...그...살인사건...비만 오면 죽이는....그 사람이...죽인 걸...내가...봐서...빨간..."


이 말을 하기까지 1분이 걸렸다.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물어봤다.

"화성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긴가요?"

"네...맞아요..."

"그 사람은 잡혔잖아요? 이춘재라고."

"네...하지만...또 있어..그 사람 아냐...내가 봤어..."

"선생님 말씀은, 그 사람의 추가 살인 현장을 봤다고요?"

"네...큰 마음 먹고...울다가 무서워서...전화를..."

"무슨 현장요?"

"그...아니라던...8차..."



그러니까 화성 8차 살해 현장을 봤다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여학생을 강간하고 죽이는 그 놈의 모습을 봤는데, 무서워서 그대로 지나쳤고, 지금까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살다가 지금이나마 용기를 내고 싶다는 게 그 아주머니가 십몇 분에 걸쳐 한 말이었다.


난 놀랍도록 무표정하고 냉철하게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정리했다.

제보 형식에 맞춰 정리를 한 뒤 말했다.

"담당 부서에 전달하겠습니다. 취재가 필요하면 향후 담당 기자가 전화 드릴 거에요."

전화기를 내려놨다.


그러나 우리의 아주머니는 30분 후에 다시 전화했다. 마치 내 목소리를 처음 듣는다는 듯.

"화성...8차...살인사건...제보를..."



새벽 5시쯤 걸려온 네 번째 전화. 이제 우는 대신 분노 섞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금 당장!!내가 증언을 하고 싶다는데!!왜 아무도 전화를 안해!!나를 몰라줘!! 내가 봤다고!!이춘재 말고 다른 사람이 죽였다고!!"


그리고 나온 마지막 말.

"왜 아무도 나를 보러 안 오는거야!!"


아주머니는 8차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알려진 소아마비 남성이 이제는 자기를 죽이려 한다며 한참 악다구를 쓰다가, 제 풀에 지쳐 새벽 6시 좀 전에야 겨우 전화를 끊었다.




화와 울분, 우울함과 외로움이 엉겨붙으면 언론사에 제보 전화가 온다.

나는 그 짧은 시간, 이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 왔을지 생각한다.

그러다 곧 "선생님 알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짜증이 달라붙은 상황을 벗어나 버린다.

지극히 기계적인 감정노동을 마친 뒤 잊는다. 까맣게.


쉽게 흘려버린 도피 속에 난 어떤 걸 놓쳤을까.

정말로 부조리한 차별을 받아, 전혀 모르는 언론사 노동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

너무 큰 충격에 정신을 놓아버렸지만 그 와중 사회에 꼭 알려야 할 인사이트를 품고 사는 사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어, 그나마 '제보를 기다린다'는 언론사 번호를 누른 사람?

내성적이고 부끄러운 성격을 이기고 언론사에 전화를 했지만 "그래서요?" 라고 시작되는 냉대에 아무 말도 못 하는 사람?


후회가 스멀거린다.

내가 너무 거칠고 잔인하게 철저히 귀찮다는 감정으로 그 흐리고 절박한 손을 내리쳐버린 건 아닐까.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겠다며 귀를 틀어막고 마음을 꽁꽁 닫아버린 건 아닐까.


언젠가 또 전화를 받았다. 연로한 할아버지였다.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라는 말로 시작된 할아버지는, 뉴스에서 기초수급 생활비를 인상한다고 이야기를 하던데 시점이 언제인지 '여쭐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건 대통령실과 정당, 정부가 논의한 주장일 뿐 아직 법으로도 안 만들어졌다고 나름 열심히 답해주었다.

할아버지는 "아...그렇습니까..." 라는 말 뒤에 오래 침묵했다.

그러더니 "번거롭게 전화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정치부에서 일하던 시절, 표 장사를 기가 막히게 하는 걸로 국회에서 유명한 한 지자체장 출신 국회의원이 있었다.

표 장사'만' 한다며 반쯤은 조롱 섞인 이야기를 듣던 그 국회의원은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 구청에서 일 할 때 민원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죠. 구청장 나오라고 소리소리를 질러대. 정말 진상이죠.

그런데 있잖아요, 그 사람들의 민원을 다 해결해줄 필요도 없어요. 그냥 가만히 들어주면 되어요. 구청장실 한번 올라오시라고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금만 기억해주고 공감해주면 되어요.

그 사람들, 자기 민원 해결 못 할 것이라는 거 아는 사람이 더 많아요. 그냥 이야기하고, 알아달라고 하고 싶은 거에요. 그럼 거기에 맞춰서 귀를 열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지지를 얻게 되는 거고, 다음에도 당선될 수 있는 거에요.

쉬워 보이죠? 절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언론인 여러분들도 그런 기회 많으실 거에요. 한 번은 해보세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또 그게 얼마나 효과적인지."



당신들의 숨은 고통을 이해하려고 시도하지조차 않은 나의 무관심한 타성은 사실, 표 계산에 매몰된 국회의원보다도 못한 이해 부족에서 파생된 부끄러운 나의 행동이었고.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며, 이 글을 쓰고 다시 한 번 반성한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잘 들어 볼게요, 당신들의 많은 이야기를.





"바다의 왕이 큰 병이나 고칠 방법이 없대요

내 친구 해미는 얼마 전에 복강경 수술을 받았고

바다의 왕을 고칠 유일한 방법은 토끼의 간이래고

유리의 강아지 담이의 암은 완치가 되었다죠

거북이는 용왕의 청으로 토끼를 잡으러 나섰고

한다는 세계를 떠돌아다니다 내 옆에서 코를 골죠

...

누구는 목숨을 찾고 누구는 사랑을 좇는 거겠죠

잘 알고 있어요 듣고 있어요 기억하고 외우고도 있죠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려주고 싶어요

잘 듣고 있어요 듣고 있어요 잘 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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