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이-아기를 낳고 싶다니
A선배가 퇴사한다는 소식을 잠결에 확인했다. 새벽 3시쯤 야근중이던 동기가 보낸 카톡에서였다.
잠에서 막 깨 알림창을 봤을 땐 국회의원 A'란 사람이 사직서를 냈다고 읽었다(나는 모 언론사의 정치부 소속이다).
늦잠에 허겁지겁 출근가방을 챙기며 다시 읽보니 A선배였다. 너무 놀라서 마을버스를 놓칠뻔 했다.
아니, 사실은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
살다 보면 도대체가 직장생활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은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다. 부정적인 뜻은 아니다. 그저 삶의 길이 정해져 있는 듯 하고, 그 궤적을 따르는 게 일반적이라 취급받는 세상에서, 유난이 튀어오르는 재기발랄함과 비범함, 그리고 개성이 이목을 끌었을 뿐이었다.
A선배는 그런 유형이었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따랐다.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모습이 좋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A선배가 사표를 냈다는 바로 전날 저녁.
최근에 고민이 많았던 나는 그 선배에게 카톡으로 이런저런 고충을 털어놓았다.
전직까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말에 그 선배는 "그래도 아직 밖은 춥다"고 타박했다.
늘 나를 설득하던 말에 이번에도 난 넘어갔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오전 사표를 내고 출근을 안 했다고? 황당하면서도 믿을 수 없어서 연락을 했다.
어찌어찌 번개로 저녁약속을 잡았다. 회사 사람 중 둘이 만나는 자리를 오히려 기다리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우리 회사 사표 형식 심플하더라 야"
누구보다 편한 옷을 입고 동네에서 만난 선배의 첫 마디였다. 어째 부러웠지만 말로는 받아쳤다
"아직 밖은 추워요 선배"
순대국집에서 곱창볶음을 시켜놓고 우리는 낄낄 웃었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고민이 많았다.
A 선배는 팀을 바꿨다. 한 달 정도 되었는데, 바뀐 팀의 군대식 억누름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허울없음과 권위, 때로는 욕설이 수반되는 대화가 친밀함이라 여기는 낡은 관습이 그 팀에는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건 기폭제일 뿐. 술자리에서 비위를 맞춰야 하고 내가 맞다고 생각해도 고개를 숙여야 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도 회식을 해야 하는 이 직장생활이라는 것에 A 선배는 그저 넌덜머리가 나 보였다.
사람을 대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는 너무도 공감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선배, 그런데 집 샀잖아요. 돈 벌어야 하잖아요."
우리는 다들 특별하지 않았다.
그 보편성이야말로 일상이고 삶일텐데, 불행하게도 인간이란 존재는 본능인지 재차 특별해지길 원하더라.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집단 내의 희귀자원을 갈망하고, 글자 그대로의 정치행위를 시작한다.
손톱만큼의 권력도 특별하다고 느끼니(그리고 날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착각하니)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정치는 가장 깊숙히 개입하고, 인사권은 어딜 가나 장난질의 대상이 되어버려서, 비틀거리며 겨우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겐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은 피로감을 선사한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선배나 나나 결국은 하고자 하는 말이 같았으니, 주고 받는 대화가 될 리가 없었다.
소주 두 병을 마시고 9시께 일어섰다.
"내일 출근하셔야죠" 선배한테 얼른 들어가라고 채근했다.
선배는 어찌 될 줄 모르겠다며 킥킥 웃었다.
그날 밤바람은 추웠었다. 미세먼지로 갑갑하던 하늘이 많이 걷혔다.
해결된 것도 없을 텐데 나는 괜히 상쾌했다.
답 없는 고민 속 동질감은 그래도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 꽤나 큰 도움이 됐다.
아기를 낳고 싶다니 그 무슨 말이 그러니
너 요즘 추세 모르니?
헤어지잔 말이 아니야 나 지금 네가 무서워
너 우리 상황 모르니?
난 재주 없고 재수도 없어
집안도 가난하지 머리도 멍청하지
모아 둔 재산도 없지
아기를 낳고 결혼도 하잔 말이지?
학교도 보내잔 말이지?
나는 고졸이고 너는 지방대야
계산을 좀 해봐 너랑 나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