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마리아(Maria)
흔히 우울증은 감기같다고 비유한다. 무슨 말인진 알겠지만 동의하긴 어렵다.
감기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나을 수 있다. 일주일 정도 잠깐 참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우울증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늪에 빠진 차가 아무리 엑셀을 밟아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처럼.
직접 겪어본 우울증은 비염이나 알러지 같은 존재에 가까웠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계속 환자를 멤돌며 일상을 방해한다. 때로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삶을 가로막는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지만, 완전히 나을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치료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아무 예고 없이, 불현듯.
스스로 병원을 찾아간 지 두달이 지났다. 나는 아직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
약을 증량했지만 성인 정량의 2/3 수준에서 더 늘리진 않고 있다. 취미 삼아 먹던 위스키는 일단 끊었다. PT를 끊고 운동을 이어간다. 억지로 가던 저녁자리는 줄였고, 회식에선 일부러 밝은 척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다행히 일상은 잘 흘러간다.
정리정돈을 하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숨이 막혀 멈춰서지 않는다. 더이상 일하다가 울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다시 바닥 없는 호수에 빠질 때가 있다. 온 몸을 늘어잡는 우울감은 비유하자면 영화에 나오는 지옥 밑바닥 같다. 얼굴 없는 검은 영혼이 나의 손과 발을 묶으면 나는 무기력해지지만, 이제는 이런 말을 되뇌일 용기를 얻었다.
이건 지나가는 거야, 나는 괜찮아질 거야, 나는 잘 하고 있어.
애인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되었다.
태생이 긍정적인 애인은 나와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행동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저 옆에서 늘 그렇듯 있어줬고, 밥을 먹었고, 시덥잖은 대화를 했다.
사회적 자아를 내비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는' 건 정말 큰 도움이 되는데, 나에게 찾아온 병 자체의 존재를 잊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나는 즐거울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었다. 애인과 함께 있으면.
그러니 부디, 글을 마치며 굳이 말을 보태고 싶다.
당신이 우울하다면 일단 병원에 가보자. 병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하더라도 일단 가까운 병원을 찾아가 보자. 복잡한 검사 후 우울증이 아니라면, 당신은 비염 환자가 아닌 것 뿐이니 참 다행인 것뿐이다.
당신이 우울증을 확진받았다면, 그냥 지독한 비염에 걸려 콧물이 줄줄 흐르는 상태 정도로 생각하자. 병원에 가서 약을 받고, 의사 앞에서 마음껏 알러지를 뽐내며 울어버리자. 의사의 처방과 조언을 따르고, 딱 2주 동안만 진창에서 버텨보자. 약기운이 돌 때까지. 우리는 이제 당분간 비염과 같이 살아야 하는 운명이므로.
당신 옆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그냥 옆에 있어주면 된다. 무슨 전염병 걸린 환자처럼 모든 말과 행동을 조심할 필요는 없다. "너의 우울증은 괜찮아?" 라고 묻는 정도는, 사람마다 괜찮은 정도가 다르겠지만 다수는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보다 더 좋은 건 당신의 일상을, 공유하고,그의 일상을 물어보고, 함께 밥을 먹어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먼저 병에 대해 말하면 들어주자. 병원에 가고싶다고 하면 함께 가줄 수 있다고 말하자. 그리고 손을 잡아주자.
부디 고난에 지지 않는 우리들이 되어 보자.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고 당신 옆의 친구는, 너무 소중한 인생들이다.
-끝-
욕을 하도 먹어 체했어 하도
서러워도 어쩌겠어 I do
모두들 미워하느라 애썼네
날 무너뜨리면
밥이 되나
외로워서 어떡해
미움마저 삼켰어
화낼 힘도 없어
여유도 없고
뭐 그리 아니꼬와
가던 길 그냥 가
왜들 그래 서럽게
마리아 마리아
널 위한 말이야
빛나는 밤이야
널 괴롭히지마
오 마리아 널 위한 말이야
뭐 하러 아등바등해
이미 아름다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