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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Oct 08. 2024

수영으로 살 못 뺀 사람의 일기


 

 졸린 눈 비비며 잠에서 깬다. 여느 때처럼 공복 몸무게를 잰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숫자가 보인다. 믿을 수 없어 두어 번 더 잰다. 너무 발을 모아 올라갔나 싶어 발을 어깨너비로 벌려본다. 중력이 고장 났던지, 체중계가 고장 났던지 둘 중 하나 같다. 중력은 내가 고칠 수 없어서 체중계를 발로 툭툭 쳐본다. 야, 정신 차려. 그러나 체중계 속 숫자는 여전히 나를 비웃는다. 얇디얇은 여름 잠옷이지만 옷 무게를 감안해 본다. 1킬로쯤 빼본다. 그럼에도 놀란 마음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수영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오늘부터 놀 수(노는 수영) 같은 건 없어. 빡수(힘든 수영)만 있을 뿐이야 다짐한다. 하필 오늘 써야 하는 글의 주제는 수영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인데... 아마 이번 글은 ‘수영하면 살 빠지나요?’ 질문의 절망 편 대답이 될지도 몰라. 빠지기는커녕, 찌던데요? 이렇게 대답해야 하다니. 아아, 연휴 때 조금만 절제할걸. 원정 수영에 갔다가 신나는 마음에 맛있는 걸 잔뜩 먹었단 말이야. 과거의 나, 원망스럽다.

 

 센터에 도착한다.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체중계에 올라선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 그나마 보던 숫자들이 나온 것에 안도한다. 오늘 수업은 나의 오늘 아침 다짐과 상관없이 엄청난 운동량이었다. 강사님께서 “오리발 하는 날은 좀 많이 돌게요”하셨다. 회원님들이 숨을 헉헉 몰아 쉬었다. 나도 부러 “후 하- 후 하-” 의식적으로 호흡했다. 살은 호흡으로 빠진대요. 어젯밤에 본 유튜브 내용을 떠올려본다. 요새 내 알고리즘은 온통 다이어트다. 수업이 끝나니 다리에 힘이 쭉 빠져있다. 노년엔 정말 지팡이를 쥐고 다녀야겠단 생각을 한다.

 

 출근을 한다. 챙겨 먹던 아침 식사는 패스한다. 지난주부터는 다시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다. 혹자는 간헐적 단식이 노화 예방엔 좋지만, 다이어트엔 효과가 미미하다고 한다.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원시 인류가 세끼를 다 먹진 않았을 거란 의견엔 매우 동의하기에 꼬박꼬박 챙겨 먹던 세끼 중 한 끼를 삭제해 본다. 일하는 중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물을 벌컥벌컥 마셔준다. 어쩌면 내가 아침을 챙겨 먹던 이유는 배고픔 그 자체가 아니라, 뱃속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음. 그래. 이건 가짜 배고픔이었어.

 

 출장지에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갈까 생각한다. 아냐, 오늘은 노트북을 들고 왔다고. 이걸 이고 지고 이 뙤약볕에 30-40분을 걸어야 하는 건 무리야. 어플로 택시를 예약한다. 이게 맞나 잠시 생각하지만 노트북이 진짜 무겁다는 걸 떠올린다. 지하철을 탄다. 금방 자리가 났다. 자리에 앉아 우리 동네 인바디 기계를 검색한다. 지난 1월엔 보건소에서 인바디를 쟀다. 보건소는 우리 집에서 20-30분은 걸어야 한다. 마음먹고 가기 쉽지 않은 거리이다. 제발 보건소 말고 다른 곳이 있길 기도해 본다. 다행히 시청 민원실에도 인바디 기계가 있다. 여기는 10분만 걸으면 된다.

 

 왠지 측정 전에 화장실을 들러야 할 것 같다. 뭐 그렇게 긴급한 신호가 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 200g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다. 하지만 내 동선에서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을 찾아 삼만리를 하기엔 귀찮음이 크다. 민원실 구석편에 ‘시민 건강측정실’을 발견했다. 짐을 한편에 두고 양말을 벗고 인바디 기계에 올라선다. 화면 속 몸무게 숫자는 아침에 본 그 숫자이다. 내심 숫자가 줄어있길 바랐는데 아쉽다. 영겁 같은 1분여의 시간이 끝나고 결과지가 인쇄되었다. 한쪽 의자에 앉아 결과지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제발, 이게 다 근육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해줘. 제발. 핸드폰을 켜 지난 1월 결과와 비교를 해본다.

 

 체중은 1월 인바디 기록에 비해 약 3.8kg가 늘었다. 겨울옷에서 여름옷으로 바뀐 건데도 놀랍다. 하, 벨트는 빼고 잴 걸 그랬나. 벨트 빼면 뒤에 소수점 사라질 것 같은데. 여기서 벨트를 빼는 상상을 해보다가,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이내 포기한다. 근육은 1.8kg가 늘었다. 대단한 성과다. 체지방은 0.3kg 줄었다. 그래도 줄어든 게 어디야? 아니 그런데, 분명히 근육은 늘고 체지방은 줄었는데  최종 체중이 3.8kg가 늘었다. 이게 뭔 일이야. 그래도 근육이 늘었단 사실에 위안 삼으며 짐을 챙겨 집으로 출발한다. 그래 윗배에 어렴풋하게 생긴 이거, 그래 너 정말 근육 맞았구나.

 

 마트에 들러 오리 고기를 잔뜩 샀다. 나는 오리고기를 정말 좋아하고, 마침 마트에서 타임 세일을 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인바디 결과에서 단백질이 부족하 댔고, 마침 나도 저탄고지 식단을 시작했다. 내가 근육을 더 키울 수 있도록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는 것이다. 그래 좋아! 근육을 잔뜩 키워보겠습니다. 체지방은 어떻게 줄이는지 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뭐든지 해볼게요! 내일 아침 공복 몸무게는 다시금 아는 숫자가 나오길 기도하며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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