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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May 13. 2023

아이슬란드에 대해 몰랐던 것들

승무원을 직업으로 하면 좋은 점 중 하나는 휴일이 많다는 것.

비행시간과 체류기간이 길면 길수록 비행 뒤에 딸려 오는 휴일 수도 길어진다.

(길 때는 휴가도 아닌데 7일을 쉴 때도 있다.)


물론, 시차에 적응하고 체력을 보충하느라 긴 휴일을 여느 직장인들의 짧은 주말처럼 소파에 드러누워 보내기도 하지만,

승무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인, '비행기 직원 할인 티켓'을 이용해서 짧은 여행을 다녀올 때도 많다.


그렇게 지난달에 4일간의 휴일이 있어 어디엘 갈까 고민하다가,

(비행을 계속하는 와중에, 여행 날짜가 당장 코 앞이라 긴 고민은 하지 못한다.)


비행시간이 길지 않은 곳으로 추려보고,

(내가 사는 핀란드 위치상 근접국가는 북유럽 아니면 발트국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멀다.)


짧은 기간에 즐길 거리가 많은 곳,

(튼튼한 두 다리가 필수인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제쳐둔다.)


그렇게 결정한 여행지가,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핀란드에서 생각보다 멀었던 아이슬란드.

헬싱키에서 오전 7시 45분에 출발하여,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에 오전 8시 35분에 도착하는 비행 스케줄만 보고는 멀지 않은 곳이라 단정했다.

현실을 깨달은 건, 탑승권을 받은 비행 당일날.

헬싱키에서 레이캬비크까지 비행시간은 거의 4시간이었다.

핀란드와 한 시간밖에 시차가 나지 않는 스페인, 프랑스와 달리 아이슬란드는 무려 세 시간.

그제야 구글지도를 들여다보니 아이슬란드의 위치는 대서양 저어 멀리, 캐나다를 가는 길목 중간쯤이었다.

아이슬란드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와 묶어 북유럽이니 당연히 이곳 언저리려니 하고 착각했던 것이다.


Skógafoss 폭포


4월, 레이캬비크는 헬싱키보다 따뜻했다.

아이슬란드라는 나라 이름 때문에, 왠지 그곳은 연중 아이스로 덮여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전 8시 35분 아이슬란드에 도착했을 때의 온도가 영상 6도. 헬싱키보다 무려 4도나 높았다.

헬싱키가 핀란드의 최남단이고 레이캬비크가 아이슬란드의 중간쯤인걸 생각하면, 핀란드가 훨씬 추운 나라였다.

다시 지도를 살펴보니, 산타마을로 유명한 핀란드의 로바니에미(Rovaniemi)를 포함한 핀란드의 북부지역은 북국권(Artic circle)에 속해 있는 반면,

아이슬란드는 나라 전체가 북극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검은 해변으로 유명한 Reynisdrangar


아이슬란드의 전체 인구는 겨우 38만 명.

핀란드인 동료들이 비행기에서 지인(30년 넘게 못 본 초등학교 동창, 고향 친구의 형제, 자매)들과 종종 마주치는 것을 목격하면서,

땅 덩어리가 아무리 커도 인구가 5백만 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 살면 이렇게 서로 만나고 엮이는 것이 숙명임을 깨달았다.

그러다, 아이슬란드에 가기 전 본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이 보다 더 한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슬란드의 웃픈 사정을 알게 되었다.

워낙 적은 인구이다 보니 국민 대부분이 가깝거나 먼 친척관계인 경우가 많은데, 친척과 이성적인 만남을 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앱이 있단다.

일명 '근친상간 방지 앱'.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온라인 계보 데이터를 찾아야 했으나, 요즘엔 앱을 켜고 서로의 폰을 갖다 대면 바로 그 결과를 알 수 있다고.

"침대에서 부비대기 전에, 앱을 먼저 부비대라" 는 슬로건 또한 재미나다.


수도 레이캬비크


삥벨, 씽벨,,, 뭐더라??

아이슬란드를 가 본 적이 있는 한 동료는, 추천하는 장소를 묻는 질문에 무척이나 말을 아끼는 듯했다.

제일 좋았던 장소 하나 알려 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대답 못할 일인가.

아마도 내가 아이슬란드에 가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정은 끝까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렌터카를 이용해서 여행자들이 그래도 가장 많이 찾는다는 여행지들을 찾아보았는데 그 이름들이,

Þingvellir, Hyeragerdi, Reynisdrangar, Seljalandsfoss, Kirkjubæjarklaustur...

알파벳을 작정하고 어렵게 조합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이름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매정할 수가 있는지, 열 번을 읽어도 몇 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증발해 버리는 난이도.

아이슬란드어는 핀란드어와 함께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도 제일 좋았던 장소 이름은 하나 기억하자는 생각 Þingvellir 국립공원을 잡고 늘어지기로 했다.

영어로는 Thingvellir라고 쓰고, 한국어로는 '씽벨리어'라고 읽는다.

아무튼, 씽벨 여기가 제일 좋았다.


씽벨리어 국립공원


아이슬란드의 물가는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핀란드에서 물가 비싼 나라를 논할 때 언급되는 곳은 노르웨이다. 바로 옆 나라 스웨덴은 핀란드보다 더 잘 지만, 물가는 핀란드가 더 비싸다.

아이슬란드는 먼 나라라 그런지 입에 올리지는 않더라도, 핀란드에서도 막연하게 물가가 비싼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저예산 여행을 계획했기에 핀란드 슈퍼에서 3박 4일간 먹을거리를 여행가방에 꽉 채워갔는데, 샌드위치와 토스트용 식빵이 생각보다 일찍 떨어져 슈퍼마켓에 가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웬걸, 평소 핀란드에서도 먹는 요거트와 비스킷, 햄, 치즈 등... 저렴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주유비를 제외하고, 차 렌트비용, 화장실이 딸린 깔끔한 방의 숙박비는 핀란드보다 저렴하거나 비슷했다.

마지막 날 레이캬비크 시내에 위치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을 때에도 맥주는 핀란드보다 1-2유로 정도 더 비쌌지만 식의 가격은 25유로 (3만 6천 원) 선으로 식당 수준과 음식의 질을 따졌을 때, 핀란드보다 조금 더 저렴한 느낌이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는 노르웨이, 스위스, 덴마크, 아일랜드에 이어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개인 생활비용 물가가 비싼 나라라고 한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씨크릿 라군


저예산 여행이었기에 스파 온천으로 유명한 블루라군 (Blue Lagoon) 대신, 사우나가 딸린 동네 야외 수영장을 가기로 했다. 아이슬란드 인들은 추운 겨울에도 물의 온도가 따뜻하게 유지되는 수영장을 즐겨 간다고 들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던 날, 수영장에 가서 사우나를 언급하며 핀란드에서 왔다고 하니, 계산대의 젊은 청년이 말했다.

"여기서는 발가벗으면 안 돼요, 수영복을 반드시 입으셔야 해요"

핀란드의 공용 사우나는 남, 녀가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가족끼리만 사용하기에 발가벗는 것이 자유다. 반면에, 아이슬란드에서는 사우나가 핀란드만큼 흔하지도 않을 뿐더러 남녀 공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아이슬란드인들은 사우나에서 발가벗지 않는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온 다음 날, 숙소 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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