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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Feb 01. 2023

나의 살던 두바이, 10년 후

꽃 피는 산골 아니, 돈 찍어내는 빌딩 숲

두바이에 살 적 나는 내 월급 수준에 비해 화려한 삶을 살았다.


쉬는 날엔 고급 호텔의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해변과 연결된 야외 수영장의 썬베드에 누워 책을 읽고 있으면, 주문한 음료와 미니 버거가 손 앞까지 대령되었다. 이런 류의 안락함을 힐링으로 정의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가끔 차를 운전해서 가는 요가 스튜디오는 통유리 창 밖으로 바다가 펼쳐지는 고층 건물 꼭대기에 위치했다. 그냥 요가만 해서는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요가 후, 해변가 레바논 레스토랑에 들려 할루미 치즈가 든 샐러드를 먹는 것 도 휴일의 낙이었다.


이슬람 도시라는 말이 무색하두바이의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호텔에서는 술을 곁들일 수 있는 레스토랑, 세계 각 국에서 온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바와 클럽들이 있었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아가서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외국인들 수시로 모이는 사랑방 같았기에 그 또한 평범한 일상에 불과했다.


보통 임금 수준의 내가 '고급'을 누릴 수 있었던 건, 회사에서 발행해 준 직원 할인카드가 그런 곳에서 50% 이상 할인의 혜택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 혜택 또한 급여의 일부로 여겨 안쓰면 손해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시끄러움이 지겨울 때면 누군가의 아파트에서 모이기도 했다. 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친구들의 아파트 역시 회사에서 제공해 준 거라 두바이의 고층 건물에 위치하며 널찍한 거실, 화장실은 게스트 용까지 두 개 이상 있는 고급 아파트였다. 가구는 아파트에 포함된 것, 고작 몇 년 일하고 떠날 계획이라 개인 물건도 많지 않아 손님을 초대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햇빛과 바다, 훌륭한 경치, 호텔 서비스, 국적이 다양한 친구들과 캐주얼한 홈파티, 잠은 익숙한 집에서, 일상이 휴가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시절에 알았다.




헬싱키에서 두바이까지는 비행기로 약 6시간 30분.

추위를 피해 온도가 30도로 치닫는 두바이를 향하는 비행기 안은 핀란드 승객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자주 찾는 스페인 섬이나 터키 남부에 비하면 비싼 여행길이다.


내가 두바이에 다시 온 건 거의 10년 만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두바이 특유의 향이 코 끝을 통해 머릿속까지 들어왔다.

아랍인들의 독한 향수 냄새, 인도인들의 옷 감에 스며든 그들이 집에서 피우는 향 냄새, 그리고 어디서 나는지 모르는 카레 향과 케밥의 숯 향이 섞인 냄새.


두바이에 살던 시절, 부모님을 뵙고 오거나 휴가에서 돌아와 이 냄새를 맡으면 집에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평온해졌고, 즐거운 일상을 이어갈 생각에 막 신이 났다.

그때보다는 낯설었지만, 한 때 익숙했던 냄새를 맡으니 다소 부산스러웠던 비행 때문에 요동치던 심장 박동 수가 서서히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자정이 넘은 시간,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 창 밖으로 기억 속 깊이 파 묻혔있었던 풍경들이 이어졌다. 요란하게 멋스러운 고층 건물들, 그중 1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자리를 꾀차고 있는 부르즈 칼리파, 풋내기 시절 빼고는 중고차를 구입하는 덕에 탄 적 없는 메트로.  빨강/파랑/노랑/초록 지붕의 택시, 운전자까지도 여성인 여성 승객 전용 핑크 지붕의 택시도 여전히 운행 중이었다.


셔틀버스가 멈춰 선 곳, 호텔 앞에는 필요 이상의 인력들이 셔츠를 빼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발레파킹 직원들이다. 줄 서 있던 승용차에서 운전자가 내리자, 한 명씩 차 키를 받고는 순서대로 지하주차장으로 사라진다. 다 필요 있는 인력들이었다. 최고의 서비스를 위해.


호텔 안에 들어서니, 리셉션 데스크가 하나도 아니고 네다섯 개. 번쩍번쩍 빛이 나는 로비에서 체크인을 기다리는 잠깐 사이 어디선가 나타난 여성이 웰컴 드링크를 건네주었다. 좀 과하다 싶은 상황들이 그들의 능숙한 서비스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렇게 보통의 사람인 나도 VIP와 같은 대접에 어느새 기분이 붕 떠 버리 곳이 두바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데려온 값싼 인력으로 초호화 이미지를 쌓아 올린 도시. 최고층 건물, 넓고 깨끗한 도로, 광이 나는 대리석 바닥, 화려한 장식까지 그들의 앙상한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룸 카드를 받아 들고 엘레베이터에 오르니 작고 마른 체구의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의 손잡이와 거울을 닦고 있었다. 지문 하나 허용하지 않을 기색으로, 마치 요술램프를 문지르듯 정성스레, 아주 열심히.


내가 살던 아파트에도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체구가 이와 비슷한 방라데시 출신의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타면 그는 고개를 푹 숙이거나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내리깔았다. 그 행동은 거의 반사적일 만큼 잽싸서 그가 그 자리를 얻으면서 받은 교육 중 하나임이 분명해 보였다.


호텔의 엘리베이터 청소부 역시 한 손으로는 걸레질을 열심히 하며, 나와 내 동료들로부터 얼굴을 돌리기 급급했다.


두바이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전 직장 동료이자 친구를 만났다.

두바이에 온 외국인들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5년이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10년이 지나 돌아왔음에도, 아직도 그곳에 만날 친구가 남아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친구를 만나기 3분 전,

2분 전,

1분 전....

친구를 보자 나도 모르게 돌고래 소리를 내며 기뻐했다.


전에도 몰았던 중고차, 변하지 않은 친구의 모습이 옛 향수를 더 짙게 일으켰다. 그때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했고, 탈모를 걱정하는 말투도 여전했다.

그 사이에 결혼을 했다는 사실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알게 되었다.


그때 친구는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했는데, 요즘엔 달달한 버블티에 빠져있는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한참을 버블티에 관해 이야기했다.

자주 먹던 인도음식, 두바이에 새로 생긴 스폿등을 함께 다니며 우리는 못 본 10년의 한을 풀었다.


친구가 회사 (내 전 직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웃기고 기가 막힌 일이 참 많이도 일어났던 전 직장 이야기는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나 또한 현재 회사 이야기를 꺼냈다가 좀처럼 하지 않는 핀란드 동료들 흉도 보았다. 그런데 말을 마치고 나니 어찌나 창피함이 몰려오던지, 이제 누구 흉볼 나이는 지났나 보다. 그렇게 불쑥 느껴지는 10년의 세월.


친구가 호텔로 바래다주는 길, 소프라노였던 기분이 조금씩 내려앉으며 자잘한 걱정들이 한두 개씩 그 자리를 채웠다.

내 새로운 삶과 새 직장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자랑처럼 늘어놓진 않았는지, 오만을 떨진 않았는지.


그렇게 내향인의 자기반성 모드에 빠져있는 사이에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의 아내였다.

전화를 끊자 친구의 입에서 아내자랑이 끝말잇기처럼 이어졌다. 그런 친구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앞으로는 나 자신, 내 삶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칭찬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반성모드를 접고 친구와 작별인사를 했다.


즐거웠던 시간은 끝이 났고, 나는 호텔 방에 들어왔다.


두바이의 삶은 늘 그랬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처럼 화려한 배경에 흥미지진하고 스릴 있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넓고 어두운 에 홀로 들어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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