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에서 깡패를 만난 그녀.
호주로 떠났던 이유가 생각났다. 당시에 원래 터키 여행을 정말 가고 싶었는데,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럽에 퍼져있던 때여서 제일 청정한 곳을 고르다 보니 호주를 택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웬걸, 뉴질랜드를 떠나려고 하는 차에, 에볼라가 호주에서도 터졌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휴.
호주에 다다라서는 뉴질랜드와는 전혀 다른 기후와 풍경에 먼저 놀랐다. 뉴질랜드는 비가 왔다가 화창해졌다가 변덕이 심한 전형적인 습한 섬나라 날씨였다. 하지만 호주는 아니었다. 광활한 대륙의 날씨였다. 건조하고 해가 계속 내리쬤다. 마치 사막 같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
호주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한인 투어가 많았다. 나는 며칠간은 자유롭게 시드니 시내에서 쇼핑도 하고, 공원에 가서 늘어져있기도 하면서 여유를 즐겼다. 혼자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양고기 스테이크도 먹고, 캥거루 고기도 먹었다. 왠지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조금은 자유로움이 채워졌다고 느꼈을 때 제일 유명한 여행사의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게 되었다.
내가 신청한 투어는 블루마운틴이랑 포트 스테판에 가는 투어였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그곳에 가려면 투어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난 뉴질랜드에서 늦잠을 자서 투어를 놓친 후 여행 내내 밤에 아주아주 일찍 잠들고 새벽같이 일어나곤 했다. (또 놓칠까 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블루마운틴 투어를 가는 날에도 나는 일찍 일어나 채비를 마치고 시드니 시내로 나갔다. 오히려 일찍 도착해서 맥도널드인지 어디인지 햄버거 가게에서 아침도 챙겨 먹고는 여유롭게 약속한 장소로 걸어갔다.
버스는 약속 장소에 정차해 있었고 나는 명단을 확인한 후 버스 위로 올랐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질 때쯤, 한 커플이 헐레벌떡 도착하는 것이 아닌가? 아 지각생이구나.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다. 코리안 타임이란 역시 이런 것인가 싶었다. 뉴질랜드였다면 벌써 버스는 떠났을 텐데. (휴... 내 10만 원...) 가이드님이 누구랑 계속 통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저 사람들이었나 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들은 미안해하지도 않고 되려 가이드님께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화가 났는가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그들이 늦게 왔다 보니 자리 배석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혼자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은 옆자리를 비우고 따로따로 앉았다. (낯을 가리는 한국인들...) 그러다 보니 그 연인들은 그 이 빠진 것 같은 자리들에 따로 떨어져 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애꿎은 가이드님한테 화를 내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돈 내고 투어 신청했는데, 이렇게 따로 앉아 갈 거면 왜 이런 투어를 신청했겠냐.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더 이상 투어가 지체되는 것이 너무 싫었지만, 깡패 같은 그 남자에게 맞을까 봐 소심하게 앉아있었다. 그는 마치 90년대 어디 지역 깡패처럼 버스 사람들을 노려보고 모자를 벗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때였다. 내가 이 사건과 엮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가이드님이 나에게 와서 자리를 바꿔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닌가. (왜 하필 나..?)
뭐, 자리를 바꾸는 데에는 몇 걸음 걷기만 하면 되었으므로 나는 모두를 위해 자리를 바꿔주기로 했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그들의 찐한 러브를 위해서. 난 블루마운틴 하이킹을 하면서도, 블루 마운틴 투어에서 롤러코스터 비슷한 것을 태워줄 때도, 세 자매 봉을 바라보며 그녀들의 전설을 들을 때도, 포트 스테판 해안 사막에서 썰매를 탈 때도... 이것이 얼마나 가이드님께 부당한 일인가, 나에게도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생각해보았다. 뉴질랜드에서 난 투어를 놓쳤기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또 뉴욕에서 결항이 되었을 때 기장에게 눈물을 흘리며 때를 쓰던 내 모습도 겹쳐 보이기도 했다. 그냥 나도 똑같은 사람인가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