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이 많았던 뉴질랜드 호주 여행(5)

우연의 우연이 만들어낸 추억

by alerce

나는 달링 하버에서 내려서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오늘이 달링하버에서 매주 여는 폭죽놀이가 있는 날인 줄 나는 꿈에도 몰랐다. 인터넷 없이 눈대중으로 스타벅스 위치를 외워두었는데 밤인 데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는 것이다.


뭐 처음부터 그렇게 꼭 만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그들을 못 보게 될 줄이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달링 하버의 한 구석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된 거 공연이나 보다가 집에 가야겠다. 하고 공연 앞에서 그들의 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들이 나를 찾아낸 것은. 그들은 공연 구경꾼 사이에 껴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나는 연락도 안 되는 상태였는데. 그것은 사실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아니라면 아니었다. 그 공연이 바로 스타벅스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난 그 공연에 매료되었을 뿐...)


나는 너무 사람이 많아서 스타벅스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 공연이 약속 장소였다. 나는 너무 놀랐지만 그들은 내가 왜 그렇게 놀라는지 몰랐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알아서 잘 찾아온 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그들과 여차저차 나의 위기를 설명하곤 때마침 잘되었다며 달링하버의 폭죽놀이를 보러 갔다.


폭죽이 펑펑 퍼지는데, 너무 가까웠다. 달링하버는 작은 항구여서 그런 것 같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터지는 폭죽은 처음 봐서 내 앞에 쏟아질 거 같은 이 반짝임이 날 감성에 젖게 만들었다. 남색 밤하늘에 터지던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폭죽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 말고 난 갑자기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내 여행 일지였다. 음, 이번 여행은 기록을 해보리라 생각하고 들고 온 다이어리였는데.. 그것을 가이드님 차에 놓고 내린 것 같았다. 조금 아쉬웠고, 조금 부끄러웠다. 가이드님이 내 수첩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는지... 뉴질랜드부터 10일 넘게 기록한 여행기록을 잃은 채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였다. 그들에게 이러저러하다고 말을 하자,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자신은 가이드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


그녀들은 로밍을 한 상태였고, 그녀 중 한 명이 가이드님께 카카오톡을 하자 이미 그는 내 수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그 수첩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가이드님은 폭죽놀이가 끝나고 ㅇㅇ호텔 앞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폭죽놀이가 끝나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면서 ㅇㅇ 호텔로 걸어갔다. 시드니의 밤거리는 축제가 끝나고 돌아가는 행렬로 붐볐고, 그 붐빔이 난 행복하게 느껴졌다.


가이드님의 차가 보였다. 나에게 수첩을 건네주시던 그는 갑자기 우물쭈물 같이 술을 먹자는 제안을 하였다. 너희도 어차피 같이 술 먹으려던 거 아니냐며. 우린 사실 아무 계획이 없었지만, 가이드님과 술을 먹는 경험도 재밌을 것 같아 그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한인 치킨 식당에 들어섰고, 그의 힘든 인생사를 들었다. (이렇게 나의 마지막 여행지 음식은 한국인의 소울푸드 치킨이 되었다.)


호주에 정착하게 된 사연, 진상 고객들, 그 고객들이 술 먹자고도 제일 잘한단다. 술자리를 가지게 되면 항상 호주에 정착하는 법 같은 정보나 물어보기 일수라고 했다. 한두 번 그럴 때는 열심히 말해주었는데 이제는 지쳐서 얘기하기도 귀찮아졌단다. 그래서 정말 정말 오랜만에 손님들과 술을 먹는다고 했다. (우린 그런 것엔 관심이 하나도 없는 직장인 무리였다.)


알고 보니 그는 그냥 가이드인 줄 알았는데 그 여행사의 사장님이었다. (!!!) 사장님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로 인해서 타지에서 외지인으로 살아가는 슬픔 같은 것을 그때 조금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고생 끝에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고, 우리에게 치킨과 술을 사주고도 남을 돈을 가졌으리라.. (아니었으면 죄송한데.. 사주셨다.)


그런데 그런 얘기들을 듣다 보니 어느덧 시계는 새벽 3시를 향하고 있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왜냐하면, 난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무계획적..) 하지만 자리를 떠나고 싶다고 말하기에는 그가 너무 외로워 보여서 계속 그의 얘기를 들어주게 되었다. 아마 나와 다른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 같다. 결국 거나하게 취한 사장님이 자리를 파하시자 새벽 4시쯤이 다 되었다. 나는 두 언니들에게 말했다. '저 내일 아침 비행기로 출국인데 지금 집에 가서 자면 못 일어나겠죠?'


언니들은 매우 놀라 하며 자신들의 숙소가 가까우니 가서 씻기라도 하고 택시를 타고 자지 말고 곧바로 공항에 가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그렇게 그녀들의 숙소에 갔다. 우린 다 같이 깔깔거리며 샤워를 했다. 몇 년을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그러고 나서 나는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 탈 수 있었다. 숙소에 다다라서는 택시기사님께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린 후, 숙소에서 되는대로 모든 물건을 캐리어에 쑤셔 박고 다시 나와, 기다려주시던 택시 기사님의 차를 타고 빠르게 공항에 갈 수 있었다. 사실 비행기 시간은 그렇게 아슬아슬하진 않았는데 왜인지 숙소에서 잠들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만 같은 피로감 때문에 나는 애꿎은 숙소를 나와서 몇 시간을 차디 찬 공항 로비에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12박 13일 호주 뉴질랜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언니 오빠들과는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한국에 와서는 서로 만나자는 말만 몇 번 주고받았다가 결국 흐지부지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우리의 호의, 친분, 우정은 여행지에서 일어난 잠깐의 마법 같은 것이었으리라.

keyword
이전 17화우여곡절이 많았던 뉴질랜드 호주 여행(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