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로맨스가 꽃 폈던 치앙마이 여행 (2)

by alerce

내 친구에게 다가온 백인 남성은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조금은 나이가 있어 보였다. 그는 내 친구에게 몇 마디 건네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앉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여행지에서 이런 경험은 늘 재밌고 짜릿하기 때문에 흔쾌히 말을 붙였다.


당시 영어 공부에 한창 빠져있을 때라서 그를 내 영어공부 대상으로 생각하고 계속 말을 붙였다. 그는 우리가 그에게 호의적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대화해보니 그는 이탈리안이었고 항공사에서 일해 잠시 이 곳에서 머무르며 휴가를 보내는 듯했다. 내 친구와 그는 어느덧 친해져 있었고 둘이서 어느새 아까 우리가 신기한 듯 쳐다보던 댄스파티 속으로 함께 사라졌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런 게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과 친구와 멀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으므로 나도 춤판으로 뛰어들어 같이 춤을 추었다. (원래 흥이 많은 편이다.) 저 멀리 친구는 그 남자와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12시 땡을 치자 집에 가야 하는 운명이 되었으므로, 그 시간을 그리 길어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12시가 되었고, 마법처럼 사람들을 흩어졌다. 노래는 끝났고, 조명은 꺼졌다. 내 친구는 쑥스러운 듯 나에게 돌아와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였다. 친구가 소리를 지른 것은.. '여권이 없어졌어! 가방에 공금 지갑은 깊숙이 둬서 괜찮은데 내 지갑도 없어!'


그렇다. 내 친구가 신나게 그 백인 이탈리안과의 시간을 즐기는 동안 누군가가 친구의 물건을 훔쳐간 것이었다. 친구는 좌절했고, 나는 멍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우리는 일단 여기저기 점원들에게 이 사정을 설명했다. 지갑과 여권을 잃어버렸다. 혹시 찾으면 연락 달라. 이런 식으로..


그리고 우린 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 이탈리안 아저씨 한 분과 남아 화장실 등등을 뒤져봐야 하나 고민하던 중, 직원 한 분이 소리쳤다. '이거 혹시 네 거니?! 너 왜 물건을 다 흘리고 다녀?' 친구의 물건은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었고 지갑만 없었다. 도둑이 친구의 지갑만 털고 나머지 물건은 다른 곳에 버리고 간 것 같았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다지 크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는데, 평소 여행 중에 하도 돌발 상황이 많았어서였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히 여권을 되찾았기 때문에 우리는 안도했다. 돈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는 진정된 후 호텔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였다. 이탈리아 아저씨가 자신의 오토바이를 끌고 나타난 것은. 알고 보니 그는 스쿠터를 하나 빌려 여행 중이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를 호텔에 태워주겠다고 했다. 고맙게도. 우린 장기 매매범이 아닐까 고민했지만, 뭔가 이끌리듯 그의 스쿠터에 올랐다.


남색의 밤하늘, 샛노란 동남아의 조명들을 뚫고 우린 서로의 허리를 부둥킨 채로 사람 하나 없는 도로를 누볐다. (나는 당연히 친구의 허리를...) 나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 동안 그 아저씨는 조용히 친구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는 식으로 꼬셨단다. 하지만 친구는 내 핑계를 대며 무사히 나와 함께 호텔에 도착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하기 따로 없다.)


그렇게 우린 우리의 무계획적임과 짜릿한 밤거리, 잠깐의 로맨스(?)를 떠올리며 깔깔거리다 잠이 들었다. 내 친구는 한국에 와서도 그 아저씨와 왓츠앱으로 종종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는 종종 내 친구의 안부를 궁금해했지만, 친구는 영어의 한계 등으로 점점 연락을 부담스러워했다.


잠깐 이탈리안 남편이 입장하는 내 친구의 결혼식을 상상했던 나는 너무 멀리 갔다는 것을 느끼고는 안도(?)했다.



keyword
이전 12화친구의 로맨스가 꽃 폈던 치앙마이 여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