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이라는 것

긍정은 마약과 같다.

by alerce



나는 긍정적인 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내가 자란 90년대는 여타 매체에서도 긍정을 좋은 덕목으로 치던 시대였다. 그렇다 보니 긍정적인 게 좋다고 생각했고 일부러라도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점점 현실을 직시하면서 긍정적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은 그만두었다.


긍정적임과 부정적임을 논할 때 흔히 예시로 드는 물컵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물이 반 컵만 차있다고 생각해봐.

긍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말할 것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 밖에 없네!라고 할 거야.”


이 이야기만 들으면 긍정적인 사람 쪽이 좋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물이 반이 있네.”


물이 반이 있으면 반이 있는 것이다. 왜 굳이 포장을 하는 걸까. 굳이 나쁘게 볼 것도 좋게 볼 것도 없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현실 직시를 못해서 이용당하기도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보수로 일하면서도 일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던 긍정적이었던 내가 돌아보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그건 그냥 무보수로 일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동안 어떤 견해도 더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재작년쯤이었다. 회사에서 풀리는 것은 하나도 없고 상사는 내 디자인을 밥 먹듯 훔쳐갔다. 그 사실을 모르는 파트장은 성과가 없다며 나를 압박했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억울함도 컸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위장약을 달고 살았고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나곤 했다. 자기 전 현실을 직시하다 보면 불면증에 시달렸다.


아.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울 때가 있구나.

사람이 너무 힘들면 긍정이라는 뽕을 맞지 않으면 살 수가 없구나.

그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좋은 날이 올 거야. 세상엔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있어. 나 정도면 행복한 거야. 이런 식의 긍정 뽕을 맞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으니까. 아. 그래서 다들 그렇게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했구나.


사람은 긍정적인 편이 좋다.

지독한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다가는 죽어버릴 것 같은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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