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도 등급이 있나 보다.
내가 자란 8-90년대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였다. 돈 때문에 우정, 사랑, 가족애 등을 저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것은 개인의 행복에 있어서 좋은 삶의 방식은 아니었다. 그들이 불행해 보였기 때문일까. 요즘은 물질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남는 것은 경험뿐!이라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다. 그래서 무조건 비싼 명품, 비싼 차보다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경험을 하는 것을 멋지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거나, 페스티벌을 가거나 하는 경험은 추억을 선사함과 동시에 물질보다 풍부한 행복감을 준다. 소유로 만족하는 시대는 갔다. 경험은 생각의 관점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에 경험 붐이 일어났다. 요즘 해외여행 한 번 안 다녀온 사람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요즘은 경험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단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보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돈만 모으면 여행을 가고, 새로운 경험이라고 하면 앞뒤 안 따지고 달려든다. 물론 경험을 중요시하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만해도 돈을 벌고 나서는 무작정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집에서 쉬고 싶을 때도 왠지 여행을 가야 할 것 같아서 떠난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사람의 본성이 그런 걸까.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못 견딘다. 요즘은 여행을 가거나 서핑을 하거나 핫 플레이스에 가거나..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경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촌스럽고 뭔가 부족한 사람처럼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선지 예전에 비해 조금 유명하다 싶은 페스티벌, 카페, 음식점, 전시, 여행지 모두 사람이 과하게 많다. 나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예전부터 꾸준히 갔지만 올해부터는 안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미 작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도 작년에 그만뒀다. 그곳들에서 내가 좋아했던 여유로운 풍경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경험을 할지 선택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가는 곳에 내가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무언의 압박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부터 나는 경험을 선택할 때조차 남의 눈치를 보게 된 걸까.
단순히 내 생각이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경험이 많다고 해서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알고 즐기는 사람이 정말 멋진 사람이 아닐까. 그것은 꼭 남들이 인정해주는 여행, 서핑, 핫플레이스 가기, 페스티벌 가기 같은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냥 집에 있기, 청소하기, 동네 산책하기, 친구와 허름한 맥주집에서 맥주 한잔 하기.. 같은 소소한 일상도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명품을 가졌다고 품격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듯이 비싼 경험을 했다고 쿨한 것도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