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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Sep 30. 2021

1. 일의 많고 적음에 대하여(1)

파이어족, 워라밸, 워커홀릭



퇴사를 준비하며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일이란 단어만큼 상반된 의미와 이미지를 가진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억지로 일을 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일이란 곧 자신의 이상과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느 쪽이든 사람들은 살면서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살아간다. 재벌들도, 평생 쓸 돈을 벌어둔 연예인도, 한 나라의 대통령도, 일을 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같은 분야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로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일로서 이름을 알리고자 한다. 그 일이란 것은 문화 예술 활동, 지적 활동, 단순한 노동, 정치 활동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은 일이라는 것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버는 수단이면 일이 되고,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면 취미활동이 된다. 취미는 돈을 주고 활동을 하는 것이니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취미를 아무리 만들어도, 일하는 것과는 다른 묘한 공허함이 있었다.


인간이란 너무나 제각각이기에 일이란 것도 단순히 정의가 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의 삶, 그 자체인 일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말들도 어쩌면 주입된 사상 같은 것일지 모른다. 이를테면 '일은 자아실현의 수단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다.' 이런 이야기들 말이다. 일을 꼭 긍정적으로 포장할 필요가 있을까? 왜 꼭 사람은 일을 해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요즘은 많아졌다.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이즈미야 간지 저자)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생계에 문제만 없다면 은퇴하고 하루 종일 취미 생활을 하거나, 큰 욕심 없이 절제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모두 노동을 하기 싫어서 재테크로 자본을 쌓으려 고군분투한다. 이런 사람들을 파이어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 누군가에게 일이란 벗어나고 싶은 족쇄이며 굴레인 것 같다. 말 그대로 노동이다. 앞서 말했듯 분명 누군가에겐 일이 곧 자아실현의 순간이며 삶의 원동력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일이란 것을 말하다 보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일을 족쇄로 느끼며 살던 시기도 있었고, 내 꿈을 이루는 수단으로써 즐겁게 일을 했던 시기도 있었다. 족쇄로서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일을 최대한 안 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일을 노동으로 보는 관점에서, 일은 왜인지  불공평하게 분배되곤 한다. 일은 어떻게든 어딘가로 몰리게 되더라. 일을 해오면서 지켜본 바로는 일이 많은 회사라고 해서 모두가 바쁜 것은 아니며, 바쁜 분야라고 해서 모두가 바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더욱 이상하게도, 일을 많이 한다고 업무량에 비례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다. 같은 돈을 받는 회사에서, 같은 직군으로 일을 한다고 해도, 업무량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같은 돈을 받는다고 치고 일을 많이  것이냐, 적게  것이냐.   하나를 택하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쪽을 택할까? 나는 20 초반에는 일을 족쇄로 여겼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쪽을 택했었다. 우스갯소리로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덕담도 유행하던 때였다. 세상 누가 많이 일하고 적게 벌고 싶을까. 난 사장이 아닌데... 자기 회사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말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이런 열정 페이를 바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대기업에 입사하면서 최대한 적게 일하고 많이   있는 부서로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결과는 좋았다. 나는 내가 지원한 부서로 배치되었다. 그곳은 소위 꿀벌들이 모이는 곳, 워라밸이 좋은 곳이었다.


처음 입사를 하고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을 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너무 하는 일이 없어서 퇴근시간까지 기다리는 게 고역이었다. 물론 알고 갔지만, 내 예상보다 더할 줄은 몰랐다. 회사가 너무 커서 그런 건가. 옆 부서 동기는 맨날 야근에, 주말 출근에 말라가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이런 일의 쏠림은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회사가 돈을 주면서 직원들을 놀리고 싶을까? 유능, 무능을 떠나서 최대한 많이 써먹고 싶지 않을까. 일을  하려는 노동자들과 일을 시키고 싶은 회사와의 눈치싸움 속에서 교묘히 숨어있는 사각지대가 어쩌면 내가 배치된 부서였을 것이다.

 

모두를 감시하려 해도 수많은 부서, 수많은 조직을 통솔하는 것은 쉽지 않고, 회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감시가 어려운 곳들이 생겨난다. 아무리 경쟁시스템을 만들고, 업무 일지를 쓰게 해도 생긴다. 중간 관리자도 한통속으로 같은 노동자이기 때문인 걸까. 너무 세분화된 업무와 직군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각지대일 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명목상 존재는 해야 하지만 일은 별로 없는 .  빤다고 하는- 소위 그런 곳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불편한 얘기지만 사실이다.


지나친 일반화를 해보자면, 그런 곳은 주로 대기업에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기업은 사람이 적기 때문에 누가 일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들어오며, 회사의 오너가 직접 관리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일의 분배가 빨리빨리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역시 대기업! 나도 시스템에 숨은 워라밸 좋은 부서 가야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가 외치는 워라밸이 있는 삶이 나는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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