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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Oct 09. 2021

2. 사람이 많고 적음에 대하여(1)

거대한 기계 속의 작은 톱니바퀴


일하는 곳은 다 제각기의 크기를 가진다.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1인 기업, 자영업, 1인 공방 등등.. 소규모부터 대규모까지. 회사의 속성은 결국 사람이 얼마나 모였느냐 집단의 규모에 따라서 나뉜다. 이 규모의 차이는 많은 일하는 방식부터 삶에 대한 가치관까지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 앞서 말했듯 대기업을 다니다가 작은 기업으로 이직한 나이기에 이 차이는 꽤나 많이 느껴졌다.


대기업은 직원 수 자체가 많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내가 살면서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부류들. 어쩌면 마주치지 않았을 유형의 사람, 직군의 사람들을 모두 마주하게 된다. 내가 다녔던 대기업은 정말 큰 회사였기 때문에, 계열사까지 합치면 이 나라의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 회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신입사원 연수를 가서 동기들과 팀 과제를 수행했던 때를 잊을 수 없다. 4년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틈에서만 있다가 이과생 문과생 유학생… 등등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들과 팀을 이뤄서 뭔가를 해야 했다. 우린 분명 대부분 대학을 나와 나름대로 어떤 기업의 기준점을 통과하고 걸러져서 들어온 인간들일 텐데도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며 문화충격을 정말 많이 받았다. 생활양식 자체가 아예 다른 느낌이었다고 할까. 성인이 되어서 경험한 굉장히 충격적인 소셜믹스의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이건 정말 큰 기업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부분은 장점에 해당되지만, 회사에 사람이 많다는 것이 안 좋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뭔가 감시당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나에겐 제일 답답한 부분이었다. 큰 회사의 직원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작은 사건도 입을 타고 퍼져나가며, 서로가 서로를 검색해서 얼굴과 부서를 검증할 수 있다. 때문에 매사에 나의 행동거지가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겐 대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희생이었다. 문란한 사생활을 가지거나, 회사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직원들은 늘 직원들의 입을 통해 오르내리곤 했다. 사내 익명 게시판에서는 그런 사건들이 단골로 올라오곤 했다.


그렇다면 업무를 할 때는 어떨까. 큰 회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일을 분배하기 위해 나름대로 체계적인 업무 프로세스, 시스템을 만들어내게 된다. 다양한 직군의 부서가 쪼개지게 되고, 이 부서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방어하고, 검토하며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큰 기업에서 일을 할 때는 아무래도 부서 간에 잘잘못을 서로 따지고 방어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그 태도는 일상에서도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고, 점점 매사에 방어적인 성향이 생기게 되었다.


대기업이 모두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이건 그냥 사람이 많이 모이면 발생하는 자연적인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보곤 했다. 사람이 많으면 아무래도 부서가 생기고, 책임자가 생기고, 위계질서가 생기고, 정치가 시작되고, 세력이 생기고, 무리를 이루게 된다. 이는 일이 돌아가는 방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수밖에 없다. 라인을 잘 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


사람이 많아서 좋은 점은 또 있다. 개인이 회사의 근간을 흔들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위 대기업에 들어가면 그 기업의 톱니바퀴가 되는 거라고 말하는데, 입사 전에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 큰 기업에도 잘하면 더 큰 뜻을 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왜 꼭 대기업 입사를 그렇게 하찮게 표현하는 걸까? 하고 반발심이 들었다.


한창 일을 열심히 하던 때에는, 내가 없으면 부서가 잘 안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오랜 연차를 내고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몸이 아파서 몇 달씩 병가를 내도, 회사에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결국 나도 톱니 중 하나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그렇게 안 좋은 일 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톱니들이 지탱해주기 때문에 걱정 없이 쉴 수 있기도 하는 것이니까.


대기업에서 잘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 톱니바퀴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아무리 특출 난 사람이라도 그 기업이 '지금' 원하는 역할에 어느 정도 맞춰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은 결국 거대한 시스템 밖으로 튕겨져 나가게 된다. 쓰고 보니 회사 입장의 장점 같기도 하다.


 거대한 기계는 톱니가 하나 사라져도 멈추지 않는다. 빈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가 어떻게든 대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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