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erce Oct 04. 2021

1. 일의 많고 적음에 대하여(2)

일의 재미도, 삶의 의미도 모두 사라졌다.




나는 대기업 입사가 확정되고 부서 지원을   무조건  부서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발품을 팔고, 귀동냥을 해서 알아낸 사람들이  모르지만, 명목상 존재는 해야 하는 그런 부서를 찾아냈다. 마침 그곳에서 신입사원을 뽑고 있었고 나는 그곳을 1 지망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부서에 배치된  부서 이동 한번 없이 8년을 일했다. 일이 지독히도 없는 시기에는 반년은 일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돈만 받기도 했다.  하는 생각은 '이렇게 아무 일도  하고 돈을 받아도 되는 건가?'였다. 예상은 하고 들어왔지만,  정도라니. 명목상 존재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일거리 자체가 없는 곳이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잠도 아껴가며 바쁘게 살아오던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일하는 시간이 지독히도 무료하고 무능해지는 시간인 것만 같았다. 나라에서 지정한 법적 노동시간을 준수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어떤 누군가는 그런 삶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시간이 너무나 공허하고 무료하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무료한 하루하루에 적응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남들이 다 맞다고 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막상 결과는…

 

그때부터였다. 나는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감과 싸워야 했다. 어쨌든 출퇴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 있으면  외의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계속해서 뭔가 시도해보려 했지만 단발성으로 그치곤 했다. 동기 부여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안주하는 삶에 적응하다가 어느 순간 불안함이 나를 엄습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지금,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시간을 허송세월 하는 것은 아닐까? 따위의 생각들이   드는  나의  속을 잠식했다. 그렇다 해도 대다수의 날들은 평화로운 일상에 취해, 대기업의 일원으로 뭔가 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난 태생적으로 일이 없는 곳과 안 맞는 인간이었다. 차라리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는 것이 나와는 어울렸다. 일이 없으면 사람들은 심심한지,  얘기에 열을 올리곤 한다. 일이 없는 곳에서도 누군가는 진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  몇몇은 정치를 시작한다. 아니, 어쩌면 그런 이유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 나름것 생각해본 이유일 뿐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작은 일을 부풀리고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있는 부서는 그랬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예민함들이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들었다.


이번에 이직한 작은 회사는 일이 많은 곳이다. 내가 8년간 대기업에서  일보다 이직한  1년도  안된 시간에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정도로 이직하고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던 것 같다.


일이 많은 곳은 일단 야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지치기가 쉽다. 새벽까지 일하다가 퇴근한 적도 더러 있었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힘들진 않은  같다. 무료하고 공허한 시간과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알차게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많이 성장하고, 배우는 시간들. 내가  무언가를 세상에 떳떳하게 보여주고 그대로 평가받는 느낌이 새삼 살아있다는 감정을 북돋아준다.

 

일이 많은 곳에서는 일이 없는 곳보다는 아무래도 동료들끼리 감정싸움 벌일 일도 적어지는  같다. 노는 사람이 없고, 생각을 깊이  시간도 줄어들어서 그런 걸까. 조금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금세 까먹게 되기도 한다.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시간도 없고, 일이 많으니 어쩌다 실패를 한다고 해도 금방  기회가  거라는 여유도 가지게 된다.


일이 많다는 것이 불행처럼 일컬어지는 시대다. 야근을 많이 하고, 워라밸이 없는 사람은 불쌍하게 여겨진다. 나도   내가 워라밸이 좋은 부서에서, 꿀을 빨면서 산다는 것이 자랑인  알았다. 그게 모두가 원하는 삶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보편적인 인간이 아닌  같다. 나는 정신없이 바쁜   좋다. 바쁜  무조건  좋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맞는 옷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같은 사람도 세상엔 더러 있다. 물론 적당한  제일 좋겠지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바쁜 쪽을 택하겠다.


그렇게 나는 일과 삶을 분리하라고 강요하는, 워라밸을 챙겨야 한다는 요즘의 트렌드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내가 더 나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02화 1. 일의 많고 적음에 대하여(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