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준비하며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일이란 단어만큼 상반된 의미와 이미지를 가진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억지로 일을 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일이란 곧 자신의 이상과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느 쪽이든 사람들은 살면서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살아간다. 재벌들도, 평생 쓸 돈을 벌어둔 연예인도, 한 나라의 대통령도, 일을 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같은 분야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로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일로서 이름을 알리고자 한다. 그 일이란 것은 문화 예술 활동, 지적 활동, 단순한 노동, 정치 활동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은 일이라는 것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버는 수단이면 일이 되고,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면 취미활동이 된다. 취미는 돈을 주고 활동을 하는 것이니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취미를 아무리 만들어도, 일하는 것과는 다른 묘한 공허함이 있었다.
인간이란 너무나 제각각이기에 일이란 것도 단순히 정의가 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의 삶, 그 자체인 일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말들도 어쩌면 주입된 사상 같은 것일지 모른다. 이를테면 '일은 자아실현의 수단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다.' 이런 이야기들 말이다. 일을 꼭 긍정적으로 포장할 필요가 있을까? 왜 꼭 사람은일을 해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요즘은 많아졌다. 일따위를삶의보람으로삼지마라(이즈미야간지 저자)라는책도있지않은가.
생계에 문제만 없다면 은퇴하고 하루 종일 취미 생활을 하거나, 큰 욕심 없이 절제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모두 노동을 하기 싫어서 재테크로 자본을 쌓으려 고군분투한다. 이런 사람들을 파이어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 누군가에게 일이란 벗어나고 싶은 족쇄이며 굴레인 것 같다. 말 그대로 노동이다. 앞서 말했듯 분명 누군가에겐 일이 곧 자아실현의 순간이며 삶의 원동력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일이란것을 말하다 보면 끝이 없을 것이다.나의경우는 일을 족쇄로 느끼며 살던 시기도 있었고, 내 꿈을 이루는 수단으로써 즐겁게 일을 했던 시기도 있었다. 족쇄로서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일을 최대한 안 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일을 노동으로 보는 관점에서,일은왜인지늘불공평하게 분배되곤 한다.일은어떻게든어딘가로몰리게되더라. 일을해오면서지켜본바로는일이많은회사라고해서모두가바쁜것은아니며, 바쁜분야라고해서모두가바쁜것은아니었다는 것이다.더욱 이상하게도, 일을많이한다고업무량에 비례해서돈을많이버는것도아니었다. 같은돈을받는회사에서, 같은직군으로일을한다고해도, 업무량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같은돈을받는다고치고일을많이할것이냐, 적게할것이냐. 둘중하나를택하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쪽을택할까? 나는20대초반에는 일을 족쇄로 여겼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적게일하고많이버는쪽을택했었다. 우스갯소리로 “적게일하고많이버세요.”라는 덕담도유행하던때였다. 세상 누가많이일하고적게벌고싶을까. 난 사장이 아닌데... 자기 회사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말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이런 열정 페이를 바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대기업에입사하면서최대한적게일하고많이벌수있는부서로 지원하기로결심했다. 결과는 좋았다. 나는 내가 지원한 부서로 배치되었다. 그곳은 소위 꿀벌들이 모이는 곳, 워라밸이 좋은 곳이었다.
처음 입사를 하고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을 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너무 하는 일이 없어서 퇴근시간까지 기다리는 게 고역이었다. 물론 알고 갔지만, 내 예상보다 더할 줄은 몰랐다. 회사가 너무 커서 그런 건가. 옆 부서 동기는 맨날 야근에, 주말 출근에 말라가고 있었다.
당시의나는이런일의쏠림은거대한시스템안에서나타나는부작용같은것이라고생각했다. 어느회사가돈을주면서직원들을놀리고싶을까? 유능, 무능을떠나서최대한많이써먹고싶지않을까.일을안하려는노동자들과일을시키고싶은회사와의눈치싸움 속에서 교묘히 숨어있는 사각지대가 어쩌면 내가 배치된 부서였을것이다.
모두를감시하려해도수많은부서, 수많은조직을통솔하는것은쉽지않고, 회사가커지면커질수록감시가어려운곳들이생겨난다. 아무리 경쟁시스템을 만들고, 업무 일지를 쓰게 해도 생긴다. 중간 관리자도 한통속으로 같은 노동자이기 때문인 걸까. 너무 세분화된업무와직군들로인해만들어지는사각지대일지도모르겠다.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명목상존재는해야하지만일은별로없는곳. 꿀빤다고하는- 소위그런곳들이세상에는존재한다. 불편한얘기지만사실이다.
지나친 일반화를 해보자면, 그런곳은주로 대기업에많이있다고 생각한다.작은기업은사람이적기때문에누가일을안하고있는지한눈에들어오며, 회사의오너가직접관리를하는경우도많기때문에 일의 분배가 빨리빨리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역시 대기업! 나도 시스템에 숨은 워라밸 좋은 부서 가야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모두가 외치는 워라밸이 있는 삶이 나는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