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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Sep 29. 2021

Intro. 퇴사를 했다.

대기업 8년 차에 작은 기업으로 이직하다



퇴사를 했다. 대기업에서 작은 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나는 너무나 무섭고 무섭고 무섭고 또 무섭고 무서웠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지쳤을 때도, 한번 더 고민했다.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계속 있어 왔지만, 다른 도전을 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 보니 8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회사 안에서 고비는 늘 찾아왔었다. 그렇다 해도 회사를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저 이직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에겐 다른 회사로의 이직도 너무나 두려운 선택이었다. 어차피 회사는 다 그게 그거라는 시니컬한 생각이 가득했던 시기였다.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 그리고 내가 일하는 분야는 하필 이직도 쉽지 않은 분야였다. 기왕 객관적으로 전혀 나쁠 게 없는 대기업을 나갈 거라면 더 대단한 도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충동적인 퇴사도 쉽지 않았다. 사업이라던지, 유학이라던지.. 좀 더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의 무언가가 있어야만 다들 퇴사를 하던데... 등등... 이렇게 생각만 하다 보니 어느덧 8년이 흘러버린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몸이 아프면서 느껴왔다. 건강했던 나였는데, 왜인지 온 몸이 계속 아팠다. 매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상투적인 건강 검진은 언제부턴가 두려운 관문이 되어버렸다. 하도 병원을 드나들어서 낯설었던 대학병원의 분주한 분위기가 익숙할 지경이 되었다. 기계적으로 접수를 하고, 수납을 하고, 처방을 받고. 이런 식의 삶을 지속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만 하던 사이, 매일 약을 안 먹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왜 내 몸은 이렇게 약해빠진 것일까. 남들은 다 별 일 아닌 것처럼 잘 다니는데. 회사 때문에 아픈 게 맞긴 한 걸까? 의심도 해봤지만, 회사를 다니고 불면증, 식이 장애 등 다양한 증상을 겪어온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물고기. 회사는 나에게 육지였다. 출근을 하면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숨이 턱. 막혀왔다. 그럼에도 계속 나는 나에게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예민한 개복치에서 다른 종들을 잡아먹는 상어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좀 더 강하게, 나도 좀 약게, 좀만 더 버텨보자. 버티다 보면 분명 편해지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고비를 한차례 한차례 넘길 때마다, 난 더 회사형 인간에 가까워졌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마도 별 계기가 없었으면 나는 그렇게 주욱 갈팡질팡하다가 정말 개복치에서 상어가 되어 40대를 맞이하고, 주변 어르신들처럼 열심히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제테크에 열을 올리다가, 50대에 접어들어 은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드는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여러 상황과 계기들은 내가 회사를 나가는 게 운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등을 세상 밖으로 떠밀었다.


퇴사의 과정은 생각보다 무미건조했다. 인사과와 얘기를 나누고, 서류에 사인을 하고, 상사에게 통보를 하고, 부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짐을 한 꾸러미 상자에 넣어 지저분한 내 차 트렁크에 처박아 넣었다. 날씨는 너무 좋았고, 부서 사람들, 입사 동기들과 돌아가며 커피를 마시며 퇴사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하여 얘기를 나눴다. 행운을 빌어주는 사람도 있었고, 걱정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상투적으로 또 보자며 밥을 사주겠다는 얘기도 몇 마디 나누었지만, '아마 다시는 못 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퇴사를 할 때 보통 기분이 날아갈 듯 하나? 한동안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한가? 얼떨떨한가? 퇴사를 고민할 때 브런치에서 퇴사를 검색해서 얼마나 많은 남들의 퇴사기를 읽었던가. 심각한 겁쟁이인 나는 잠이 안 오고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미래가 막막하고 무서웠다. 회사를 떠나면 갑자기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렇게 겁이 많은 나는 퇴사 후 이직이라는 굉장히 소박하고 현실적인 결정을 내렸다. 대기업이 아니라 작은 기업으로의 이직. 뭐 대단히 사업을 한다거나, 다른 분야로 도전을 한다던가, 유학을 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너무 김이 빠지는 결말이지만, 그럼에도 나에겐 나름대로 정말 큰 결정이었다.


작은 회사로 이직한 지 근 1년이 다 되어간다. 대기업을 첫 직장으로 시작해서 늘 호기심만 품었던 작은 회사. 로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악명은 뉴스로부터 익히 들어왔었다. 내가 회사를 나가는 날, 한 상사 분은 나에게 왜 굳이 급을 다운그레이드 하냐며 버티지 그랬냐고 말하셨다. 나는 급이 낮아진 걸까? 이 결정을 먼 훗날 후회하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나는 개복치가 아니라 생각보다 더 작고 별 볼일 없는 물고기… 송사리 같은 것이었을지도… 대기업을 다닐 때는 내가 개복치일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작은 기업을 와보니 민물고기가 바다에 간 거였던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요즘은 제자리를 찾은 듯 이 작은 연못 같은 회사에서 조용히,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난 일이 싫어진 줄 알았는데,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직을 해보니 답은 간단했다. 환경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그냥 나와 맞지 않았던 것뿐.


나도 퇴사하기 전에 브런치, 유튜브 등에서 남들의 퇴사 기를 수집하곤 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의 일련의 경험담을 이렇게 글로서 남기기로 결심했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퇴사 바로 직후였지만, 날것의 요동치는 감정을 그대로 남기는 것이 두려워서 3개월을 미뤘다. 그러다가 다시 큰 마음을 먹고 브런치를 켰지만, 너무 상투적인 퇴사기가 아닌가-하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지금 다니고 있는 작은 회사와 대기업을 비교 해보는 글을 쓰기로 다짐하고 나니 지금 회사를 더 제대로 겪어봐야 할 것 같아, 또 3개월을 미뤘다. 그러다 얼추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정리하니 1년이 훌쩍 지나있었다.


이렇듯 나는 조심스럽게 회사를 다녀본 경험을 풀어내 보고자 한다. 물론 회사는 모두 서로 다른 장단점이 있다. 대기업도 다 부바부(부서 바이 부서)라고 하고, 작은 회사들도 다 제각기의 문화가 있고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또 같은 경험을 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도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큰 회사와 작은 회사는 규모의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어떤 차이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그 부분을 정리해보고자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얼핏 분석적인 척 접근해 보았다지만 그냥 일개 송사리 같은 인간의 경험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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