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당연히 인생을 살아가며 중요한 요소이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는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고, 인생의 가능성까지도 재단하곤 한다. 여행도 돈이 있어야 갈 수 있고, 새로 연 멋진 맛집도, 인간관계도, 연애도 돈이 턱없이 부족하면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회사원들에겐 연봉이라는 것이 회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처음 입사지원서를 낼 때도, 이직을 할 때도, 배우자를 고를 때도 연봉을 척도로 삼을 정도로 연봉은 중요한 부분이다.
작은 회사로의 이직은 나에게 일종의 실험이었다. 돈을 적게 벌었을 때 정말 그렇게나 불행해지는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사실 직장인이라는 것은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로 따졌을 때 그렇게까지 큰 연봉 차이가 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주변 중소기업을 다니는 친구들과 나의 생활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정말 의사, 변호사, 연예인처럼 전문직종이 아니고서야 직장인의 연봉이 뭐가 그리 차이가 난다는 것이기에 나는 이 연봉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이 회사에만 고이게 되는 것인지 점점 의문이 들었다. 대기업 연봉이 많다지만 어차피 많이 벌어봤자 그만큼 세금이 높아져서 그게 그거이기도 하고, 신분이 바뀔 만큼의 돈을 주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물론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는 것, 성과급, 대출이 잘 나온다는 점 등 연봉이 채워주지 않는 다른 금전적 이득도 많긴 했다. 그런 것들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대기업이 잘 맞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직을 했고, 연봉을 낮췄다. 꿀 부서에 고인 지 너무 오래되어 연차에 맞는 실력도, 경력도, 포트폴리오도 딱히 없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대기업 연봉을 맞춰줄 수 있는 회사는 찾기 힘들었다. 다른 비슷한 대기업 이직을 시도해봤지만 서류에서 떨어졌다. 좌절도 되고 내 위치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더 느꼈기에 연봉을 낮춰서라도 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내가 정말 돈 때문에 불행해진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정말 달마다 몇십만 원 더 못 벌어서 크게 불행해지는 거라면, 난 작은 회사를 다신 쳐다도 안 보고 다시 어떻게든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 노력할 참이었다. 왜인지 적어도 먼 훗날에 돌이켰을 때 퇴사라는 선택을 후회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돈을 적게 번다고 해서 그렇게 크게 불행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굶어 죽을 일도 없었고, 행복도가 떨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행복도는 더 올라갔다. 사실 나는 원래도 별로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명품을 몸에 휘감고 다니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슈퍼카를 사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별 욕심도 없는 사람이 왜 그렇게 연봉이 줄어드는 게 무서웠을까.
단지 적당한 차를 끌고, 적당한 곳에서 살며, 적당한 외식을 가끔 하는 정도는 평범하게 벌고, 아낄 부분을 아낀다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삶은 생각보다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다. 이직하면서 이유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 성과에 대한 압박이 대부분 사라지면서 전반적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그냥 날씨 좋은 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정도로 행복감에 가득 차기도 한다. 전에는 몇백만 원 들여서 해외여행을 다녀와야만 느꼈던 행복을 산책을 하며 그저 몇 분만에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상투적인 말이라 싫어했던 문구인데,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 괜히 있는 말이 아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