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공부를 하거나 자격증을 따고 학교를 다니는 행위) 혹은, 일터에 나가서 일을 실제로 하는 시간으로 채우며 보낸다.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일을 한다.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 그냥 심심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인기를 얻고 싶어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단지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저런 이유들이 섞여 있다. 나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돈도 돈이지만 일을 통해서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돈은 굶지 않을 정도와 주변 지인들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디자인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디자인에 대해 잘 알고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막상 디자인이라는 것을 배워보니 디자인하는 동안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를 정도로 재밌었다. 대학 학과와 맞지 않아 방황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게임을 하는 것보다, 밥을 먹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연애를 하는 것보다, 잠을 자는 것보다 디자인을 하는 것이 더 좋았다. 당시의 나는 정말 단순하게 디자인을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고 나름대로 돈 걱정할 필요 없는 좋은 직장에 취업도 했다.
하지만 직장인 디자이너가 되어버린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저 내 인생에 할당된 불운이었던 걸지도. 회사에서도 열심히 지금처럼 해오던 대로만 하면 될 것이라 여겼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왜인지 점점 일에 대해서, 디자인에 대해서 시니컬해졌고, 불행해졌다. 회사에서 성과를 못 내면 자존심이 상하고 불안했지만, 성과를 낸다고 해도 내가 성장을 했다거나 좋은 디자인을 했다는 성취감은 전혀 없었다. 성취감이 없는 삶은 불안정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한 느낌이었다. 전혀 내가 꿈꿔온 디자이너의 삶이 아니었다.
내가 꿈꿔온 꿈을 이루었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또 다른 꿈을 꾸는 것이, 어떤 목표를 만든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룬다고 해서 내가 행복할까? 지금처럼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세상이 펼쳐지면 어떻게 하지? 란 생각에 겁이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제일 좋은 선택 같았던 때였다.
심지어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이직을 하고도 얼마간은 '돈을 적게 벌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 행복하다'는 말. 상투적인 자기 합리화하는 말이라고 여겼다. 그냥 행복하다고 자기 암시 거는 거 아냐?라고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돈이라는 것은 숫자로 바로 보이는데, 성취감이나 보람 같은 것들은 실체가 없었다. 누구든지 지어내려면 지어낼 수 있고, 아무리 진심이어도 진심을 꺼내서 직접 보여줄 수가 없다. 그래서 참 돈을 좇는 것은 오히려 단순하고 쉬운데, 성취감을 쫒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난 요즘 진심으로 돈을 적게 벌어도 좋다. 이렇게 디자인이 재밌는 일이었는데 나는 왜 그걸 잊고 살았을까. 나는 이름을 잃은 센이 되어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이 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조차 잊은 채로. '돈을 적게 벌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 행복하다'는 상투적으로 하는 말들을 조금만 믿어봤다면 난 좀 더 빨리 행복해졌을까? 아니면 그냥 다시 찾아온 인생의 운이 좋은 시기인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사를 하고 대부분은 가난과 불행 속을 허우적대는데 나만 나랑 맞는 회사에 들어와서 행복한 걸까. 나는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