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해야 할 때는 화내는 것이 당연하다.
분노 조절 장애. 최근 뉴스에서 많이 들려오는 말이다. 분노는 적절히 조절 못하면 언어폭력이나 물리적 폭행. 가끔은 살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잘 다루어야 하는 감정인데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요즘 한국 사회는 화가 많다고들 한다. 여자 남자 어른 청소년 할거 없이 서로에게 화가 나 있다. 여혐 살인까지 있었으니. 사회 전체가 분노 조절 장애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나는 화를 내는 것이 꼭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분노라는 감정은 기쁨, 슬픔처럼 평범한 감정이다.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건 아무도 뭐라고 안 하면서, 분노할 때 화내는 게 왜 나쁜 걸까? 화내지 말고 일단 참으라고 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데 왜 사람들에게는 꿈틀댐조차 허락하지 않는 걸까.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유지되는 평화는 비정상적인 것이다.
화가 났는데 표현도 못하고 참기만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의 경우는 신입사원 때 할 말을 못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성추행을 당해도 웃고, 부당한 일을 시켜도 조용히 넘어갔다. 그러고는 혼자서 끙끙 괴로워했는데 늘 잘 따지는 내 친구는 나에게 왜 말을 못 하냐며 답답해했다. 나도 내가 답답했다. 왜 화를 내려고만 하면 목이 탁 막혀버리는지. 늘 부당한 상황은 갑자기 불쑥 들이닥쳤고, 나는 당황한 채로 당한 뒤 상황이 끝나버리곤 했다. 그런 후에는 따져볼까 하다가도 나 하나만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또 입을 다물었다.
어느 순간 내가 다른 종류의 분노 조절 장애 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봤다. 왜 화를 못 내지? 언제부터 화내는 걸 체념해 버린 걸까? 화를 지나치게 과하게 내는 것만 분노 조절 장애인 줄 알았는데. 나는 화를 못 내는 병에 걸려있었다.
요즘 미투 운동이 한창이다. 수많은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분노를 억누르고 살아왔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항상 성추행 당시 적절히 거절을 못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분노해야 할 타이밍을 놓쳤고 추행당했다. 분출하지 못한 화는 그들의 내면을 썩게 했다. 사람은 모두 피해를 입으면 똑같이 화가 난다. 똑같이 억울하다. 단지 어떤 사람은 말을 못 할 뿐이다. 그들은 천성이 타고났을 수도- 용기가 부족했을 수도- 또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워 왔을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화를 내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억눌렀던 사회 곳곳의 화가 이제야 분출되고 있다.
미투 운동을 지켜보면서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기쁘다. 나도 5년 차 직장인이 된 지금은 전과 다르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화내는 연습을 했다..) 어쩌면 사람이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잘 표현하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