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은 게 내 탓은 아니고 같은데.
자책할 때 꼭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난 자존감이 낮은 가봐..'
변명할 때도 꼭 나오는 단어다.
'내가 자존감이 어릴 때부터 낮아서..'
언제부터인지 모든 안 좋은 성격은 '자존감이 낮은 것'에서 발병하는 것처럼 정의되고 있었다. 모든 병은 자존감이 낮은 것에서 오는 것이니, '자존감을 높인다'는 말은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은 당연한 말일 것이다. 그에 맞춰 여러 콘텐츠에서 자존감을 높이는 법에 대한 소개도 많이 나오고 있다.
나는 어느 순간 의문이 생겼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걸까, 낮은 걸까? 생각해보면 모든 게 잘 풀릴 때는 자존감이 높았고, 원하는 바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자존감이 낮아졌던 것 같다.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자존감이 높아졌었는지, 남들에게 늘 관대했고 아주 건강한 멘털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들어간 직장에서 계속 디자인 안이 탈락했을 때, 사귀던 남자 친구가 내 행동을 계속 지적하며 날 바꾸려 들었을 때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남들이 나를 우습게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에 나는 친구에게 '네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닐까?'라는 말을 들었고, 자존감을 높이고 싶어서 '자존감 높이는 법'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 방법들이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세요' 따위의 당연한 말들이어서 읽다가 그만둬 버렸다.
그놈의 자존감이 높은 사람 이란 건 뭘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같이 느껴진다. 애초에 언제나 완벽하게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내 주변에선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는 소리를 들을 때는, 단지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심리학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 사람이기에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들 때 자존감을 탓하다 보니 내가 어느새 주변의 모든 불행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세상이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는데 나는 목표를 세워가며 자존감을 스스로 높여야 하는 걸까.
나는 자존감이 낮다고 느껴질 때 어떻게 자존감을 높일까.. 고민하는 것이 늘 하나도 도움이 안 되었다. 살면서 자존감이 하염없이 낮아졌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자존감을 짓밟는 남자 친구, 친구, 직장, 상사, 부모님.. 그들을 어떻게든 피하거나, 그들의 태도가 바뀌기를 기다리거나.. 자의든 타의든 상황이 바뀌어야 했다. 비로소 모든 불행이 지나가면 건강한 내면을 회복했다. 결국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것. 바로 내 상황이 좋아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