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도 나름 만족스러울 때가 있는 법인데..
요즘은 옛날과 다르게 퇴사를 하는 것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마치 퇴사가 유행인 것처럼 느껴진다. ‘퇴사를 하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어요’ 같은 만화들이 인기를 끌고, 어디서 들어보니 ‘퇴사 학교’라는 것도 생겼다더라. 나는 5년 차 직장인인데, 항상 동기들과 모이면 언제 퇴사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입버릇처럼 ‘우리 언제 나가냐’, ‘너 아직도 안 나갔냐’를 말하곤 한다.
카페, 요식업, 어플 스타트업 등... 창업을 하고 가게를 차리는 사람들이 멋지고 자유롭게 보이다 보니, 일반 직장인들은 상대적으로 용기도 없고 꿈도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직장인인 나도 가끔 정말 내 인생이 답답하다. 회사에 남는다고 회사는 60살까지 나를 고용해주지 않겠지. 나는 무능한 부장이 되어서 경쟁에 밀려 퇴사를 종용당하다가 늦은 나이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잉여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회사를 나가기에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괜히 무턱대고 나갔다가 상황이 악화될까 봐 무서운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뛰쳐나갈 용기도 없지만, 딱히 용기를 낼 만큼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아니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내 밥벌이를 책임질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지.
물론 퇴사를 하지 않고 계속 회사를 다니면서 퇴사 후에 할 일을 일궈나가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절대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어떤 회사는 부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회사는 미친듯한 야근에 시달리기도 한다. 모두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퇴사를 하는 것이 자유와 도전의 신호탄같이 보인다. 이쯤 되면 내가 월급 매달 나오고 주말에 쉴 수 있는 직장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한들 다들 안 믿어주는 분위기다. 직장 생활이 늘 좋을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만족스러울 때도 있는 것인데.. “정말로 직장생활이 만족스러워.”라는 말을 들어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음.. 약간 직장인들 사이에서 금기어인 것이다. 우린 모두 ‘불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는 동지!라는 분위기가 만연한다.
주말에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라는 책을 보았다. 제주도에 이주해서 카페, 민박, 푸드트럭 등을 창업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인생을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았다고. 그냥 충동적으로 제주도가 너무 좋아서 이주했다고.. 장사에 지쳐서 다시 내륙으로 돌아가더라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언젠가 나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혹은 다른 이유로 퇴사를 한다면 (회사가 망해서 잘린다던지..), 직장 생활 또한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직장에서 겪었던 좋았던 일, 나빴던 일들 모두 그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일 테니까. 마치 제주도에서 카페를 차린 후 겪는 모든 좋고 나쁜 경험들이 그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이듯이. 직장 생활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너무 나 같은 직장인들이 자신을 깎아내리며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