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청예 May 18. 2021

수박이 먹고 싶어!

달달하고 과즙이 흥건한, 여름의 상징



먹고 싶어



출처 헬프팁


수박이 먹고 싶다. 수분을 흥건하게 머금고 잘익은 수박. 빨간 과육 부분을 앞니로 양껏 베어 물면 아사삭 조각난다. 잘린 절단면에서부터 달달한 과즙이 흠뻑 뿜어져나온다. 입안을 가득 채운 과즙은 차갑고 산뜻하며 달콤하다. 수박 특유의 과일 향이 코끝까지 풍기며 여름을 알린다. 먹음직스럽게 썰어놓은 수박은 특유의 삼각형 모양을 자랑한다. 이왕이면 빨간 과육이 넙적하게 치솟은 조각을 먹고 싶다. 성가신 수박씨가 입안에 굴러다닐 때면 혀로 요리조리 굴려 퉷하고 뱉어버린다. 빨갛고 초록인 과일 사이 새까만 수박씨가 송송 박혀있지만 괜찮다. 실수로 수박씨를 씹어도, 그 돌발마저 여름의 맛.


입안 가득 슈와아악 소리가 나며 과즙이 넘쳐흐른다. 여름을 촉촉히 적시는 맛.


자취를 하는 탓에 여름마다 수박은 그림의 떡같은 과일이다. 한여름엔 오후 2시만 돼도 온 방안이 열기에 잠식당한다. 도피하듯 찾아간 마트엔 수박이 진열돼 있다. 나는 괜히 아쉬운 마음에 둥그런 수박을 손마디로 두드려본다. 통-통- 소리 속에 꽉찬 달콤함을 생각하면 군침이 난다. 얼마나 달까, 얼마나 촉촉할까, 얼마나 아삭할까. 한입 가득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꽉차지만 살 수 없다. 그러니 오늘 글에서라도 실껏 만끽해야겠다.



1) 시원하고 톡쏘는 사이다 수박화채


출처 우리의식탁


수박은 삼각형 조각으로 썰어먹어도 맛있지만 화채로 먹어도 좋다. 한여름의 즐거운 맛, 모두가 함께 모여 더위를 식히는 행복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수고스러움을 피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깍둑썰기로 알맞게 조각낸다. 그 위에 청량한 사이다를 콸콸 붓는다. 경쾌한 탄산 소리가 화채의 시작을 알린다. 얼음이 있다면 얼음도 추가! 클래식한 화채라면 여기에 후루츠칵테일을 넣어도 좋다. 단, 국물까지 넣으면 지나치게 달아지니 그건 피하도록 하자.


하지만 굳이 깍둑썰기 하지 않아도 좋다. 온가족이 모여 숟가락으로 박박 퍼낸 수박도 맛이 좋으니까. 꽤나 거친 수박 결이 느껴진다. 씹는 순간 더욱 경쾌하게 퍼지는 사운드. 한숟갈 크게 퍼 입에 넣으면 차가운 사이다와 수박과즙이 당을 높인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산뜻하다. 여름날 추억이 깃들 것만 같다. 커다란 그릇에 수박화채를 잔뜩 담았다가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고 싶다. 또는 정겨운 친구들과 선풍기 바람을 솔솔 쐬며 먹고 싶다. 창밖으로는 한낮의 맑은 풍경이 펼쳐지기를.



2) 할머니댁의 추억


출처 리얼푸드


여름날 할머니댁에 가면 항상 커다란 수박을 한덩이씩 준비해주셨다. 우리를 기다리는 내내 차가운 물에 담긴 수박이, 수면 위로 머리를 빼꼼 내밀고 둥둥 떠다닌다. 물이 미지근해지기 전에 건져 올려보자. 오랜만에 온 손자손녀 앞에서 날이 매섭게 선 칼로 쑹덩 썰어낸 수박. 반으로 쩌억하고 갈라지며 탐스러운 붉은 빛을 뽐낸다. 초코처럼 박혀있는 씨도 밉지 않다. 오히려 할머니댁에서 먹는 수박에 씨가 없다면 아쉬울 것 같다.


베어 무는 맛이 충분할 정도의 두께로 썬 수박에선 벌써부터 달콤한 향기가 난다. 귀신같이 몰려온 파리를 손으로 휘휘 내치며 먹는다. "할머니도 좀 드세요, 아냐 나는 단 걸 별로 안좋아해서." 눈치없이 제 입만 채우는 철없는 손녀. 올 여름에도 철없는 짓을 하고 싶어진다. 할머니가 썰어주는 수박에는 정겨운 맛이 있다. 그리운 여름, 보고픈 당신의 맛. 입안을 담뿍히 적시는 고향의 여름.



3) 쉬쌀래요, 아 아니다, 안 쌀래요


출처 중앙일보


어린시절 수박을 먹고 자면 이불에 지도를 그린다는 말이 무서웠다. 어른들은 수박 한 조각 들고 덜덜 떠는 나를 놀리는 일이 즐거웠나보다. 그러나 어린 나에겐 중대사였다. 한 조각을 먹고 이불에 지도를 그릴 것인가! 혹은 실수를 막기위해 수박을 포기할 것인가! 머리는 수박을 포기하라 했지만 코끝은 간질이는 향내를 이긴적이 없다. 항상 나는 수박에 패배하던 유치원생이었다. 저 그냥 먹고 쉬쌀래요. 어떻게든 되겠죠.


쿨한척했지만 그날만큼은 자기전에 화장실에 두번씩 꼭꼭 다녀왔다. 이정도면 괜찮겠지? 불안해하며 나무발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래도 용기를 내 먹은 수박은 가치가 있었다. 어린 아이들에겐 용기가 필요한 단 맛. 어른이 돼서도 밤늦게 수박을 먹으면 화장실에 가곤 한다.



4) 고개박고 와구와구 갉아먹을래


출처 송북전통시장


뾰족한 모서리부분을 살짝 베어먹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아. 초록 껍질 부분에 닿을 듯이 거칠고 크게 와앙! 베어 물고 싶다. 슈왁슈왁 과즙 소리마저 각별하다. 치아로 씹을 때마다 오직 수박만 갖고 있는 과즙이 철철 흘러나온다. 한여름 타는듯한 갈증이 사라진다. 시원하다. 동시에 목구멍으로 부드럽고 상쾌하게 넘어가는 과일이다. 그 어떤 과일보다도 여름을 기분좋게 하는 맛이 있다. 계절에도 수문장이 있다면 단언컨대 여름의 몫은 수박이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찔 듯한 수분감과 새빨간 과육. 익살스러운 검은 줄무늬. 나는 수박이 먹고 싶다. 수박이 먹고 싶어.

이전 06화 돼지국밥이 먹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