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에서 한 생각 #3
제주에 도착한 지 1주일
여느 날처럼 게스트들과 저녁에 술 한잔에 스몰토크를 진행했다.
간단한 주제로 시작했지만, 명상, 종교, 거기에 철학까지. 다양한 주제가 의식의 흐름대로 오고 가며,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모두가 집중하는 중이었다.
술이 잘 받지 않는 나도 맥주를 조금씩 홀짝이며 이야기를 경청 중이었다. 다른 이들의 견해가 이해되기도 했고, 나와 다른 생각의 출발점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유쾌한 개발자 부부의 결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사람이랑 저랑 할 수 있는 최고의 애정표현이 뭔지 아세요? '나만큼 너를 사랑해'에요.
저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어요. 어떤 일이든 제가 중요하죠. 그래서 저에겐 나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표현이에요.
이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고요. 헌신하는 사랑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기에 우리는 결혼을 했죠."
"나만큼 너를 사랑한다"는 멘트에 나는 먹던 술이 확 깼다. 나에게 사랑이란 '마음속에서 올라와 교감하는 아가페적인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연애를 하며 나는 내가 우선이었고, 혹여 연애를 하더라도 항상 사랑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 나 자신이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만큼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달랐다.
'본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수많은 고민한 끝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기에, 이건 사랑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지키며 사랑하는 방법을 의미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에 적어도 앞으로의 내 사랑이 저 방향을 추구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물론 사소하고
보잘것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그들의 결론이 무엇보다 대단한 의미였다.
20대 초반까지 수동적 삶을 살아온 나는 변화를 갈망해왔고 그중에서도 타인의 생각과 태도를 배우고 카피해 왔다. 타인의 장점을 카피하는 것에 회의감도 들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카피했던 것이 나에게 나만의 오리지널로 승화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나는 오롯이 나의 '판단'을 하는 능동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30대가 된 이후,
세상은 뻔해 보였고 어느 순간부터 '이 정도면 세상을 안다'라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제주에서 들은 "나만큼 너를 사랑한다"는 혜안에 나의 갈길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주의 나날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내가 형성한 생각을 다시 곱씹어 보고자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그 준비가 나를 조금은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물론 불안하고 힘들겠지만 문제는 없다.
어찌 되었든 그것이
내가 결정한 오롯한 '판단'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