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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Sep 14. 2021

가족에 대한 예의

D-7 명절증후군

D-7.

하- 한숨부터 나온다.

일 년에 두 번뿐인 민족대이동의 시간은 왜 이리 빨리 돌아오는가.


이 기간 즈음이 되면 늘 컨디션이 급 난조를 보이며 기분이 우울해지는 대한민국 보통의 며느리는 오늘도 생각한다. 가장 어려운 관계는 결국 가족이라고.


어젯밤 우연히 왓챠에서 <시바 베이비>라는 단편 영화를 보았다. 시바(shiva)는 7일간 고인을 위로하는 유대교식 장례 문화를 말한다고 한다. 영화는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장례식보다는 참석한 가족들과 주인공의 모습을 주로 그리고 있는데 시바가 내겐 낯선 전통임에도 불구하고 명절에 모인 우리와 어찌나 그 모습이 비슷한지 꽤 몰입해서 봤다.


영화는 철저히 주인공 편에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끝도 없이 나타나 나(주인공)에게 달려드는 친척들을 눈앞에 비추며 시작한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본인도 아직 정하지 못한 취업이나 졸업 후 계획을 (만나는 사람마다 돌아가면서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묻고, 연애나 결혼 같은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해댄다. 이런저런 충고나 다른 사람과의 비교도 서슴지 않는다. 한마디로 가족은 거침이 없다. 그들은 나의 성생활부터 식습관, 미래까지 모든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고 나의 이야기를 함부로 공유하며 그로부터 다시 나를 평가한다.


주인공은 대충 거짓말로 둘러대고 어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지만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뿐이다. 악의는 없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질문 공세에 주인공은 끝내 정신이 혼미해져 앞 뒤가 맞지 않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엉망진창 실수만 한다. 그러다 끝내 각자의 사정을 가진 채로 모두 다닥다닥 붙어 다시 한 차에 타고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것이 가족이다.


그러니 명절은 왜 힘든가? 가족이 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대인이나 우리나라처럼 혈연주의 사회에서는 특히 피로 맺어진 그 폐쇄성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며느리가 되고 나서야 우리나라에서 '피'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제대로 실감했다. 결혼을 하면 철저히 성씨에 따라 나뉘어 각자의 역할을 하니까. '정통 피'는 엄숙하게 제사를 물려받고 제사를 지내며 제사를 물려준다. 다른 성씨 며느리는 며칠 전부터 바쁘게 종종거리며 제사를 준비하고 정리하지만 정작 제사를 지내는 동안은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저 '남의' 조상님은 왜 이렇게 오늘의 나에게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시는가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다.    


가족을 혈연 중심으로 좁히면 그 안에 속해도 바깥에 있어도 모두 어렵다. 가족이란 가장 가깝고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도 그렇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책, 영화, TV를 통해 주입된 화목한 가정에 대한 환상이 보이지 않지만 서로 피를 나눴다는 유대감,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 닮아있다는 착각과 만나 단단해질 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는 실수를 반복한다.  


가족은 물론 소중한 사람들이다. 가족의 범위를 넓혀 나를 오늘에 이르게 한 모든 양육자와 지인을 포함한 형제자매들이라고 치면 우리는 분명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고 추억을 공유했으며 분명 나의 중요한 가치관과 사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가족도 기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위, 며느리야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부모를 둔 형제자매도 얼마나 다른가? 그 중요한 '피'를 나눈 가족도 (어떤 깊은 인연으로 이렇게 가족으로 만났겠지만) 실은 각기 다른 별에서 단지 공통의 부모를 통해 이 세상에 온 전혀 다른 존재라 여기고 대하는 편이 서로의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다시 추석이다. 명절이 대한민국 며느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굳이 더 보탤 필요도 없겠지만 영화를 보는데 가족 사이에서 힘든 게 나만은 아니라는 점은 새삼 묘한 위안이 되었다. 싱글이라,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없어서, 미래가 막막한 취준생이라 혹은 기타 각자의 사정으로 우리는 가족 앞에서 작아지고 상처 받고 힘들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나의 치부를 가장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집요하고 공격적인 질문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너덜너덜해진 채로 집으로 돌아오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세상 어디서나, 누구 집이나 사실 대부분의 가족은 그렇다고 생각하면 약간은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사랑보다는 예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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