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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Sep 04. 2021

조직의 폭력성과 방관자들에 대한 일침

Netflix <D.P.>

난 웹툰을 보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단 웹툰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인상적으로 보았던 <나빌레라>와 함께 이번 <D.P.>도 모두 웹툰 원작이라니 주로 기안84나 고액 연봉 기사로 접해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연예인 느낌을 줬던 웹툰 작가들이 새삼 달라 보인다. 웹툰이 다룰 수 있는 소재와 주제가 이렇게 넓고 깊을 수도 있구나. 역시 대세는 웹툰인가보다.


주로 하루를 남편과 함께 넷플릭스를 보다 잠드는 걸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둘 다 만족스러운 영화나 시리즈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쪽이 즐겁게 보는 동안 상대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기 일쑤. 이 시리즈는 일단 군대 이야기라니 남편은 끝까지 볼 것 같았고 정해인이 나오니 나도 약간의 즐거움은 있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열었다. 액션물인 줄 알았는데 (심지어 장르가 액션인 게 맞는데) 6화까지 다 보고 나니 먹먹한 이 기분은 어쩌지. 흘깃 보니 남편도 착잡한 얼굴이다. 어젯밤 우리는 모두 울컥하여 오래 석봉이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나에게 아들이 없어 얼마나 다행인가. 이기적이지만 이 시리즈를 보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다. 난 남자 형제도 심지어 과거에 군대 보내본 남친도 없었다. 그저 이제 민방위마저 모두 끝난 중년의 남편만 곁에 있으니 그나마 이 정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열심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 군대는 다 저런 거야? 늘 본인이 전방에서 얼마나 힘들게 군 생활했는지 내가 듣기엔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또 시작하려 할 때 세상 남 일 바라보듯 지루한 표정을 지었던 게 새삼 미안해서 가만 옆에 앉은 남편의 팔짱을 꼈다.


이렇듯 군대라면 간접 경험도 거의 전무하지만 나에게 <D.P.>는 군대 이야기보다는 사람, 특히 조직 속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렇게도 조석봉 일병(조현철 분)을 괴롭히던 황장수 병장(신승호 분)은 왜 그런 거냐는 석봉의 절규에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악마 같던 황장수도 사회에 나오면 사장의 조임을 받는 편의점 알바생일 뿐이다. 단지 본인보다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철저하게 힘의 서열을 만들고 약한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하는 비합리적인 폭력은 비뚤어진 개인의 탓이기도 하지만 군대라는 폐쇄적인 조직이 만들어낸 어두운 음영이다. 완벽하게 선한 인물은 없음을 감안하면 황장수가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보다 그런 그가 무섭도록 내무반을 장악하도록 만드는 덴 암묵적인 동조자들의 무거운 침묵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 훨씬 더 아프게 다가왔다.


침묵이 습관이 되어갈 때 평소 성격이 간디 같이 착해 별명이 봉디쌤이라는 조석봉 일병은 탈영병이 되고 잠재적인 사회악이자 정신병자 혹은 살인마가 되어간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미쳐가는 사람이 어디 석봉이 한 명뿐일까? 부대원 이탈에 대외 이미지만 신경 쓰다 끝내 전시 상황에 준하는 무장 상태로 출동 명령을 내리는 헌병대장 천용덕은 정상인가? 함께 생활하던 동기를 죽일 수도 있단 걸 알면서도 그대로 명령에 복종하고 실탄을 장착한 채 무장 출격한 사람들은 어떠한가? 조직 안에서 모두는 괴물이 되어간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운 좋게 괴롭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면) 어디 즈음 서 있었을까. 마지막까지 최선의 의지와 행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준호나 호열(구교환 분),  박범구 중사(김성균 분)가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아마도 폭력과 공포 앞에 무기력했던 방관자들 중 한 명 혹은 아주 좋게 봐줘야 적당히 처세술을 발휘하다 막판에 일말의 양심은 지키는 임지섭 대위(손석구 분) 정도가 되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마지막 즈음 동생의 유골함 앞에서 왜 가만히 있었냐 날 선 질문을 내뱉는 우석이 누나(이설 분)의 서늘한 시선에 죄송하다고 고개 숙인 준호(정해인 분)에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6화가 '방관자들'이었던 데 이 시리즈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가해자나 피해자보다는 방관자들이 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것 같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시리즈를 끝낸 것도 비중이 미미했던 석봉이 친구 김루리라는 걸 봐도 그렇다. 작은 수통도 6.25 때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폐쇄적인 조직이라는 점은 절망적이지만 가장 미미한 존재라 할지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고 일침 한다. 시즌 2가 꼭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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