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해요

by againJ

햇살은 찬란하고 산수유, 개나리에서 소박하게 시작된 봄이 벚꽃 폭죽으로 절정에 이른 축제 같은 날들이다. 아침 수련을 나설 때마다 오늘은 요가 대신 산책을 나갈까 충동에 휩싸이곤 했지만 간신히 유혹을 뿌리치고 요가원 가는 길의 꽃무리로 대리 만족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선지 놀이터에서 뛰어놀기보단 앉아서 머리로 하거나 손으로 하는 일에 익숙했다. 책을 읽거나 무언가 끄적이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 힘들이지 않고도 순식간에 매력적인 세상에 입장할 수 있었으니까.


대학 신입생 시절, 좋아하던 교수님께서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에 들어와 영문도 모르고 나간다는 농담을 요즈음도 종종 떠올린다. 전공을 선택할 때 일말의 고민도 없었고 계속 공부할 줄 알았던 그땐 정작 흘려듣다 지금 보니 꼭 내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서. 읽을 책은 넘쳐나는데 단어와 문장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다. 몇 백 년을 살아남았다는 좋은 글들이 정작 토양이 메마른 내 안에는 스며들지 못하고 줄줄 새는 듯했다. 결국 대학원은커녕 떠밀리듯 학부 졸업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회로 나왔다.


취미를 물으면 여전히 겸연쩍게 독서라고 조그맣게 말하는 편이지만 한동안 말과 글에 심한 염증을 느꼈다. 열등감인지 말과 글이 번지르르한 사람일수록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말에서 시작되어 말로 끝나는 궤변, 본인의 세계에 갇힌 자가당착에 코웃음 치면서도 정작 힘들 때면 말과 글에 파묻히는 난,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애매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런 내게 요가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다. 처음에는 그저 몸이 정말 약하구나, 부족하구나만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요가는 몸과 나누는 대화 같다. 목요일까지 수련하고 금, 토, 일을 쉰 다음 월요일 수련을 시작하면 매번 그 삼일 사이 몸이 다시 무너져 있었던 걸 느낀다. 월요일 힐랙스로 몸과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나면 화요일 아침은 어김없이 근육통 당첨. 수련한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이러냐 싶다가도 몸이 쉰 티를 이렇게 팍팍 내는구나 싶은 것이다.


근육통으로 아우성인 몸을 겨우 이끌어 화요일 수련에 임하다 보면 점점 아사나에 조금 더 깊이 머물 수 있게 된다. 주말 동안 마이너스 1 즈음으로 후퇴했던 몸이 플러스 0.2 즈음이 되는 순간이다.


이번 주는 시르사 아사나(머리 서기)에서 후굴로 넘어가는 비파리타 단다 아사나를 시도했다. 여전히 시르사 아사나로 흔들리지 않고 서는 게 어렵고 비파리타 단다 아사나도 부축을 받지 않고 혼자 해낼 수는 없지만 끝까지 가봤다는 데 기쁨을 느낀다. 복부 힘이 생긴 게 느껴지고 후굴 동작이 조금씩 편안해지면서 우스트라사나(낙타자세)가 가능해졌고 완전히 넘어가는 카포타사나(백밴딩자세)도 수련 중이다.


몸은 정직하다. 뒤늦게 생애 처음으로 이 사실을 온몸으로 체득해가며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완성된 것도 없고 변화도 더뎌 반 보 전진하면 다시 일 보 후퇴하는 느낌이지만 오래 방치되었던 몸을 스스로 돌보고 있다는 이 느낌이 좋다. 비루한 나의 몸도 아주 조금씩 한계의 외연을 확장하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긴다.


머리로는 스스로를 속일 수 있었다. 지금 네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넌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몸은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라고.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자랑스러우면 자랑스러운 대로 매일 약간의 성공과 실패를 과장없이 받아들이라고 가차없이 내뱉는다. 나는 요즈음 이 꾸밈없는 몸의 언어를 알아듣는 일이 무척 신기하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