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최재천의 공부>를 즐겁게 읽고 있다. 인상적인 구절이 많아 꼭꼭 눌러 읽는 중인데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혼자만의 시간이다. 고독을 외로움과 구별하고 자발적 홀로 있음이라 정의하며 이 시간이 창의력과 생산성의 주된 원동력이라 한다. 황동규 시인은 이를 '홀로움'이라 했다.
내게 홀로움의 시간은 요가 매트 위에 섰을 때와 무언가 읽고 쓸 때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나에게도 중요하다. 이 홀로움의 시간을 잘 보내야 나머지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약속 때문에 월요일 하타 수련을 하지 못했다. 지난주 수요일 이후로 5일이나 쉬다 화요일 비크람 수련을 들어가니 몸이 뻣뻣하게 굳고 코어 근육이 풀린 게 곧바로 느껴진다. 미세하게 달라진 몸은 균형 잡는 동작이 많은 비크람에서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난주에는 분명 편안하게 한 발로 서서 상체를 반 숙이고 깍지 낀 손끝을 앞으로 찌르는 툴라단다사나를 해냈는데 이번 주는 지탱하는 발목이 애처롭게 부들거린다.
수요일 아쉬탕가 중 시르사 아사나도 다시 후퇴. 한 다리로 살짝 차올리는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고 다리를 주욱 펴는 시도를 했다 몇 초만에 내려왔다. 아, 모래성 쌓기냐, 이게 뭐람...... 몸도 마음도 한없이 가라앉을 때 선승 같은 원장님께서 외치신다.
"지금에 집중, 집중!"
월요일 수련을 못해서 평소에 잘 가지 않는 목요일 오후 수련을 했다. 고요한 수련실에서 매트를 깔고 가만 누웠다. 내 한 몸 누우면 꽉 차는 매트에 눈을 감고 누워 전신의 힘을 툭 빼면 마음이 한없이 자유롭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이 매트 한 장이 전부고 이 순간 존재할 수 있는 곳도 여기뿐이라는 자각이 든다. 이 매트 안에서 매일의 기쁨과 슬픔, 성장과 후퇴를 고루 맛본다.
홀로움의 시간을 위해선 의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다른 매트를 기웃거리지 않고 매트 안의 나에게 집중하는 훈련.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는 변수도 많고 컨디션도 별로였지만 나의 변화를 세세하게 알아챈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위무해본다.
엄마, 아내, 큰 딸, 맏며느리 등 해내야 할 역할들이 휘몰아치듯 나를 덮쳐올 때 홀로움의 시간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자주 매트 위에서 아사나가 아니라 오늘 저녁 메뉴나 아이 스케줄, 집안 대소사를 생각하곤 했다. 해야 할 일은 쌓여있는데 여기 있어도 되나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모든 것을 끊고 홀로움의 시간에 충실하기 위해 애써본다. 오늘의 나를 왜곡 없이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자세와 쉽게 좌절하거나 우쭐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은 메워주고 잘한 부분은 스스로 다독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보려 한다.
이렇게 쌓이는 시간이 삶을 변화시키고 나를 나아가게 한다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