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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Nov 28. 2023

가벼움은 예술

병원 검사로 한 주 수련을 쉬다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로 들어가니 역시나 묵직한 무게감에 목과 어깨가 짓눌린다. 이러면 금세 양 팔꿈치도 흔들리기 마련이고 나 같은 경우는 힘이 오른쪽에 쏠려 있기 때문에 3분 이상 지긋이 머물기가 더 어려워진다. 평소 두 다리로 설 수 있다면 반대로 서있을 수 있어야 한다, 동요하지 말고 가만 머물러 보라는 원장님의 목소리는 수련실에 울려 퍼지는데 내 몸뚱이는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가벼움은 예술이다. 평소 우리는 수천 가자의 무게에 눌려 있다. 과거, 잃어버린 행복, 실연, 현재 이뤄야 할 것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아라는 무게에 눌려 있다. 견디기 힘든 가장 무거운 것은 자아다. 자아가 무거운 이유는 지금 나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때문이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만든 그것 말이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 때문에 자아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정작 나는 나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자아의 여러 이미지와 함께 살고 있다.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中



바다와 삶을 비교하는 이 에세이를 나른하게 읽다가 이 대목에서 뜨끔했다. 무거움은 요즈음 나의 최대 고민이었다. 시르사아사나에서 느껴지는 무게감만큼 내 글이 의도치 않게 지나치게 무거워지고 있었다. 매해 점점 더 짧아지는 숏 패딩 유행만큼이나 드라마도 짤로 보는 게 대세인 그야말로 쇼츠의 시대에 누가 이런 글을 읽을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이런 재미없는 글들을 써댔던 건 마음속 깊은 곳엔 내 글이 무거운 이유가 자아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착각이 있었던 것 같고.


이 무게감이 내가 단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실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현실의 나는 주로 ott나 tv 채널을 돌리며 낄낄거리는 한없이 가벼운 인간이지만 위태롭도록 평범한 삶을 탈피해 늘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글 속의 나 같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건 아닌지. 그리고 진짜 내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여러 자아가 쓴듯한 글들은 다소 무겁고 공허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시르사 아사나를 할 때 다리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고 요가 선생님은 조언하셨다. 분명 다리를 받쳐 드는 모양새지만 사실 이 아사나를 잘하기 위해선 다리보다는 복부에 집중해야 한다. 이 아사나의 균형은 양 팔꿈치와 깍지 낀 손가락이 만드는 안정적인 삼각형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복부의 힘에서 나오니까 말이다.


한 주를 쉬면서 눈에 띄진 않지만 복부의 힘이 그새 풀려 버렸다. 쌓는 건 어려운데 잃는 건 한순간이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다시 반복적인 수련을 통해 단단한 복부와 조절하는 힘을 꾸준히 기르는 수밖에.


현실의 나도 마찬가지. 꾸준히 쓰면서 적어도 글보다는 나은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언젠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예술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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