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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un 06. 2023

타인에게 다정해질 결심

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엄마, 숯불 열기가 엄마 쪽으로 가는데 괜찮겠어? 너무 뜨거운 거 같아. 엄마 나랑 자리 바꿀까?"

-"아니야 괜찮아. 엄마는 지금 이 열기가 그렇게 뜨겁진 않아. 따뜻한 거 같기도 하고 이 정도는 참을 만 해."

아들은 10분마다 숯불 열기를 작은 손바닥으로 체크했다.

"엄마 정말 괜찮겠어? 잠깐 밖에 다녀오는 게 어때? 너무 뜨거운데, 엄마 얼굴도 빨개진 거 같고"

-"점점 더워지는 거 같긴 하네. 엄마 생각해 줘서 고마워, 엄마 감동이야."


얼마 전 시댁 부모님과 시누이 가족들이 다 모여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가게에 갔었다. 가게 안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왁자지껄한 소음과 숯불에 익어가는 고기의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누구도 내 얼굴에 전해지는 열기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나 조차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둘째 아들은 그 열기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나는 아들의 끝없는 걱정에 한번 자리에 일어나 시원한 바깥공기를 쐬고 왔다. 그제야 아들은 안심했다.

예전 남편과 연애를 할 시절, 거리를 걸을 때 남편은 항상 내가 그늘아래 걷도록 애를 썼었다.

타인에게 받은 내 인생 최고의 배려였는데. 이제 그 타이틀은 아들에게 넘어갔다.^^


  


수영을 오래 했었다. 오래간만에 수영장을 가서 자유형으로 두어 바퀴 레일을 돌았을 즈음, 같은 레일에서 자유형을 하고 계시던 최소 60세 이상은 돼 보이는 할머니가 내게 조언을 해주셨다.

"오랜만에 수영을 하나 봐요."

"지금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간 거 같은데, 좀 더 힘을 빼봐요."

"그래야 힘들지 않게 레일을 계속 돌 수 있어요. 안 그러면 호흡도 가파지고 근육통도 오고 그럴 거예요."


그리고 할머니는 본인의 자유형을 한번 봐보라 했다.

할머니는 겉으로 보기엔 나보다 훨씬 무거워 보였지만 물에서 만큼은 깃털만큼 가벼워 보였다. 자연스럽게 뻗은 손으로 물을 뒤로 밀어내면서 쭈욱 나가셨다. 발차기도 요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물살들은 세차게 밀렸다.


반면에 나는 손과 발로 물과 싸우면서 겨우 전진하고 있었다. 물은 나를 막는 존재였다.


할머니에게 물은 적당한 속도로 함께 달리는 친구 같았다. 물은 할머니를 뒤에서 밀어주고 아래에서 올려주는 존재 같았다. 몸에서 힘을 뺀 할머니는 물을 그렇게 다루고 있었다.   


무엇이 물을 밀어냈을까.

힘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타인에게 받은 최고의 조언이었고, 지금도 풀지 못한 조언이다.



퇴근길에 듣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왠지 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연수 작가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흘러나오자 귀를 쫑긋했다. 아쉽게도 인터뷰는 끝나가고 있었다.


배철수 님이 물었다. "그래서 23년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김작가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기분이 좋아질 결심.

 타인에게 다정해질 결심.

 길을 잃은 곳에서 뭔가를 가져올 결심. "

작가님이 부연설명을 하셨는데 나는 듣자마자 그 말이 너무나도 좋아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 기록했다.

그리고 그 결심들을 곱씹었다. 몇 분 후 그중 하나의 결심이 입에 계속 맴돌았다.  


바로 '타인에게 다정해질 결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것은 당연한 거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다정해야 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억울해졌다. 저 사람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데 내가 왜 다정해야 하는가 생각만 해도 머릿속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타인들이 내게 줬던 '다정'들이 하나둘씩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잊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타인이 내게 줬던 '다정'들은 겨울밤 함박눈처럼 쏟아졌다.


하루라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들이 만들어낸 세월 속에서 나도 누군가에겐 타인.


타인에게 다정할 결심은 결국 나에게 다정할 결심이다. 억울해하지 말자. 어쩌면 '억울함'이 몸에 들어간 쓸데없는 힘일 수도 있다.


몸에 억울함의 힘을 뺏을 때 나의 아들이 보여준 그러한 '다정'이 나에게도 생길 수 있을까.


다시 한번 김주무관이여

몸에서 '억울함'을 빼고 빼기를. 버리고 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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