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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un 18. 2023

안녕, 안녕, 영영 안녕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우리 동기 00주무관, 아니 00아


소주보단 맥주였고 특히 블랑

고기는 종류를 불문하고 말해 뭐야이고

피자는 청년피자 같은 중소기업피자를 좋아하고

비엔나소시지를 좋아하는 00.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정말 좋아하는 00

계란 간장밥을 좋아하는 00

닭껍질을 좋아해서 달껍질만두도 좋아하는 00

그냥 치킨보다 양념치킨을 더 좋아하는 00

해장으로 국밥을 좋아하는 00

 (동기의 추모글 중에서)


아침 출근길에 "새벽에 00 이가 떠났다"는 말에도, 내부망 인트라넷에 올라온 '00 주무관 본인상'에도

믿을 수 없었는데, 서둘러 간 너의 장례식장에서 너에게 두 번 절을 한 후 우리는 그제야 알 거 같았어.

너는 정말 하늘나라에 간 거구나.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너의 영정사진. 너는 참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 우리는 웃을 수가 없었어.


발인하는 날, 네가 지청에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올 때 그제야 너의 사진을 봤었어. 지금 네 얼굴 보고 인사하지 않으면 영영 못 보낼 거 같아서.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사서 너의 책상에 두려고 했었는데 좀 더 일찍 네가 온다는 말에 커피를 못 샀어. 미안해 00아.

나는 왜  아이스아메리카노 하나를 못 사서 너에게 주지 못했는지. 나는 왜 이리 게으른 건지.



너의 짝지였던 00 이와 함께 너의 장지로 가는 길.

짝지를 잃어버린 덩치 큰 00 이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어. 우리가 함께 소풍도 다니고 맛있는 돈가스도 먹고 칼국수도 먹고 오래 같이 걷고 그랬는데. 이제 우리에 네가 없으니 우리 모두 다 쓸쓸해 보였어.


네가 두 시간도 안 돼서 한  '재(ashes)'가 돼 버린 것을 보고 나는, 결국 우리는 한 줌 재였구나

그런데 그리도 많은 걱정들로 괴로워했을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마침내 재가 되어 날아가는 존재일 뿐인데. 그럼에도 우리들 먹방여행도 가자, 버스여행도 가자 했는데. 우리는 '한 줌 재'였을 뿐인데.....


작은 항아리에 너를 담아 어머니와 아버지가 떨어지면 깨질까, 불면 날아갈까 두 손으로 꼭 안아서 가시는 모습이 신생아를 품은 듯했어. 부모보다 한참이나  컸던 젊은 아들은 다시 신생아가 돼서 늙은 부모 가슴에 안기는구나.


창창한 미래가 있었던 젊은 아들을 잃어버린 너의 부모님 앞에서 우리가 운다는 것은 너무 죄송한 일 같았어.  착한 동생을 잃어버린 누나 앞에서 우리가 운다는 것은 너무 염치가 없는 거 같았어.


쏟아지는 눈물도 흘러내리는 콧물도 우리는 열심히 삼켰어. 자꾸만 들썩이는 어깨는 두 손으로 감싸 안았어.


ashes room 2층에 자리를 배정받은 너에게 작별의 말을 할 시간이 왔을 때 나는 너에게 꼭 큰소리로 말하고 싶었어. 네가 아직 들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우리가 얼마나 너를 좋아했는지 알지. 우리가 잊지 않을게, 우리가 꼭 기억할게, 다시 찾아올게, 거기선 아프지 마, 우리가 다음에 닭강정 사 올게, 꼭 다시 만나자, 잘 가, 잘 가 우리 동기 000"


크게 말하려 했는데 나이 든 이 동기는 끝까지 눈물, 콧물을 참지 못해서 또박또박 말을 못 했어.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 앞에서 그렇게 울면 안 되는 거였는데. 용서해 줘 00아.


너를 보는 듯했던 너의 아버지가 목이  말이 안 나오는데도 가슴을 두 주먹으로 두들기며 이런 말씀을 하셨어.

"나는 사랑하는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오래 살 겁니다. 여러분도 우리 아들 기억해 주고 흔들림 없이 살아줘요. 꼭 오래오래 살아줘요."


어렵게 하신 말씀에 큰소리로 "네 아버님, 우리도 그럴게요."라고 답을 했어야 했는데 이미 콧물로 가득 찬 목구멍에서 소리가 안 나왔어. 미안해 00아. 우리가 조금 더 대했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울기만 해서 미안해.

 

우리끼리 이런 말을 했어. ashes room은 사후 세계 회사 같다고 그렇다면 우리 00 이는 신입으로 들어가서 이생처럼 바로 똑똑이로 두각을 드러내면서 승진도 1등으로 할 거고 이생의 공무원 호봉, 군경력 다 인정돼서 바로 5호봉으로 시작할 거라고.  00 이는 어디에서나 사회생활을 잘할 거고 팀장님 과장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거라고.


우리 모두 들어갈 회사에 네가 먼저 간 거라고, 우리 기억해 줄 거지, 우리가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 챙겨줄 거지, 그땐 바쁘다고 약속 미루지 말자. 그땐 만나고 싶을 때 만나자. 여행 가고 싶을 때 여행 가자.

안녕, 안녕


23년 6월 어느 날, 우리 동기가 나의 동기가 하늘나라에 가서 별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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