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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ul 15. 2023

신규는 그대로인데, 변한 건 나

고용센터 김주무관이야기


7월에 우리 팀에도 신규가 왔다. 21년에 내가 왔고 22년에 한 명이 왔고 23년엔 두 명이 왔다.


내가 신규일 때 (라떼엔 말이지) 매일 생각했다. 다음에 신규가 들어오면 말도 많이 걸어주고 업무도 천천히, 꼼꼼히 가르쳐주겠다고 말이다.


또 우리 팀의 시그니처인 '겨울같이 차갑고  칠흑같이 어두운 조용함'에 지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행정직, 상담직 등 직렬의 다름이 불러오는 묘한 기류, 한시임기제, 공무직, 기간제 등의 차이로 인해 발생되는 조직의 말조심 문화 등 미리 알아두면 실수를 덜 하게 되는 팁들을 전해주려 했다.  


그리고 실무를 시작했을 때 받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고용안정, 고용창출, 모성업무 등 여러 업무의 장단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주려 했다.


팀장님이나 각 업무별 선배들의 특징에 대해서도 파악이 빠르도록 돕고 싶었다. 기업지원팀은 갈라파고스섬처럼 본관에서 분리 돼 홀로 떠 가고 있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 오는 게 좋다는 것도 말하려 했다.


마지막으로 답답하면 바람 쐐기 좋은 비밀의 장소도 말해주고 싶었다. 주변에 맛있는 커피숍도, 콩국수가 맛있는 가게도, 두루치기가 유명한 기사식당도, 닭가슴살이 들어간 콩나물 해장국집도 말이다.  



신규분들이 왔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은 없었다.

점심시간도 달랐고, 굳이 내 시간을 내서 따로 반드시 전할 중한 조언도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 도움이 필요한 반짝반짝한 신규들은 그대로인데, 이제 나는 그런 생각을 매일 하는 반짝반짝한 신규가 아니었다.


나는 이제 기업지원팀 3년 차 공무원이었다. 하루하루 반드시 해야 하는 나의 일들을 매뉴얼대로 체크하고 처리해야 했다.


우리 업무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심사 업무는 확실히 알면 알수록 일이 늘어나는 구조이다. 1년 차일 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2년 차엔 보이기 시작했고 3년 차엔 빠른 시간 내에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인다는 것은 서류 요청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타기관에 업무 관련 공문 발송도 자주 보내야 함을 의미한다.


알아챘겠지만, 2년간 회사 생활을 한 김주무관은 '사회의 때'가 탔다.


결정적으로 나의 친절함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해졌을 때 곤란했던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직원들에게 '함부로 친절'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는 당연히 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교도 아니고 그냥 돈을 받고 일하는 '회사'일 뿐이다.


그 안의 사람들에겐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대하면 된다. '친절'이 필수는 아니다. 안 그런 척 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인 이곳에서 '나의 친절'은 '누군가의 호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친절'할 수 없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말해준다면 신규는 행복할까. 팀 적응에 도움이 될까.


지금 내 답은 '아니다'이다. 미리 들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냥 부딪히는 대로 알아가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어디에서나 운명적으로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그곳이 회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회사를 가는 원래의 목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신규분이 내게 업무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업무를 제대로 숙지할 수 있게끔 끝까지 책임지고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하고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변한 건 나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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