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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Mar 27. 2022

"2년 차일 때 위험해,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내가 한때 기자였을 때 운 좋게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님을 인터뷰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땐 그분이 가진 엄청난 상징성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기본 질문만 준비해서 인터뷰를 하러 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그때는 뭐에 홀 듯 취재 장소 향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변명 같긴 한데 이유는 있었다. 24시간 돌아가는 취재와 기사 쓰기, 각종 회의들을 내 체력이 따라가지 못했다.


늘 졸려있었고, 멍해있었다. 기자를 너무 하고 싶어서, 취재하는 것이 정말 좋아서 마음은 하늘 끝에 가 있었는데 그것을 뒷받침해 줄 체력은 없었다.


한 겨울, 법원에 취재를 갔었다. 당시 정적으로 핫한 학자의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밀려오는 졸음에 취재수첩에 지렁이만 쓰고 있었다. 재판을 참관하던 누군가가  "오른쪽 판사가 졸고 있어요!"라고 크게 소리를 쳤고 소스라치게 깨어나던 판사의 표정만 정확히 기억났다. 그건 기사에 필요 없는 에피소드였다.


그런 나였기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님 인터뷰도 '내가 졸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생각만 했었다.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있던 광화문의 넓은 인도를 걸어갔다.  회사 사무실에서 국가인권위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였다.


국가인권위 사무실에 도착하니 위원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위원장님은 정말로 인권을 지켜주실 것 같은 인자한 미소와 주름을 가지고 계신 이웃의 할아버지 같았다.  


준비한 질문을 했고 위원장님은 천천히 알기 쉬운 말로 답해주셨다. 무난하게 끝이 났다.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떠나려고 할 때 갑자기 위원장님이 내게 물었다.

"김 기자님? 사무실이 여기서 많이 머십니까?"

내가 답했다.

"아닙니다. 올 때도 걸어서 왔거든요. 한 20분 정도이고 빠른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립니다. "


위원장님은 잠시 밖에 나가 분홍색 보자기로 싼 묵직한 뭔가를 양손에 들고 오셨다. 가까이서 보니 국가인권위원회의 역사와 활동을 정리한 책들이었다. 한 권당 십 센티 정도의 두께에 가로세로 30*20 돼 보이는 책이 한 보자기당 5권씩 들어있었다. 최근에 봤던 책 들 중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책과 겉모습이 비슷했다.


위원장님은 "기자님이 이렇게 위원회에 직접 오셔서 취재도 해 주셨는데 감사해서 드린다"며 "이 책들을 읽고 국가인권위원회를 더욱 깊이 이해를 한 다음 제가 한 번 더 기자님 하고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괜찮으시냐"라고 했다.

 

나는 일단 오늘 인터뷰는 "내일 기사로 나가야 합니다"만 하니 "그건 상관없다'"하시면서 "기자님이  제가 드린 자료들을 다 읽어본 후에 언제라도 다시 연락을 주시라"라고 하셨다.


나는 '뭐지?, 이런 건 처음인데, 선배한테 빨리 물어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양손에 무시무시하게 무거운 책 보자기를 들고 사무실을 걸어가는 데  손가락에 마비가 올 뻔했다. 보자기 끈에 짓눌린 내 손바닥과 손가락은 빨갛게 부어올랐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선배들이 날 보고 깜짝 놀라 했다.

"너 뭐야, 그거 왜 받아왔어? 그거 퀵서비스로 받으면 되는 거잖아, 아니면 파일로 받아와도 되는 것을, 그걸 들고 온 거야????"


다른 선배가 말했다.

"위원장님한테 김 기자 혼난 거네, 저번에도 준비 없이 취재 간 다른 기자한테도 그랬다던데. 좀 꼼꼼히 준비를 잘하지, 오늘을 잘 기억해 둬라 ㅎㅎ"


단순 보도기사 정도는 몇 분만에 쓰고  국회의원도 취재해 보고 유명인사 동행취재도 해 본 것만으로 완전한 '언론인'이 된 것처럼 '자만'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을 때 위원장님을 만났다.


기자가 된 지 2차,  '기본'은 안다고 생각했던 김기자는 그날, 착시현상으로 만들어진 김기자의 자만을 볼 수 있었다.




공무원이 된 지 2년 차,  저 때의 내가 생각이 난다. 노트북 가방을 메고 양손에 무거운 책 보자기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갔던 나의 모습,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던 나.


그런데 지금 내가 어설프게 안 나의 업무 지식과 민원인에 대한 매뉴얼로 자만에 빠져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 수천만 원씩 결재를 올리고, 내가 '돈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건 아닐까. 또 다른 오만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은 그때처럼 나를 혼내 줄 인권위원회 위원장님도 없는데 말이지.


이제는 나의 자만과 오만을 신사적으로 알려줄 사람은 없다. 내가 나에게  '나는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나는 배울 게 아직 너무 많은 사람이다'라고 나를 돌아보면서 업무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그날 위원장님이 내게 직접 싸 주신 책 보자기의 무게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1년 전 서류 한 장을 보는 데도 10분이 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민원인의 물음에 답했던,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더 공부해서 답하려고 했던 그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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