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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an 20. 2023

반말하는 사업장 담당자와 돈을 빨리 달라는 민원인

고용센터 김주무관이야기

내가 예전에도 말했다. '적들은 한꺼번에 온다고'

그날도 그랬다. 전날 꿈이 뒤숭숭했다. 내가 20층 건물 벽에 딱 붙어 있었다. '앗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겠는데.' 하지만 의외로 꿈속에선 매우 이성적이고 침착했던 김주무관은 '내가 지금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떨어지는 건 아니겠군, 아래를 보지 말고 등으로 최대한 밀어 내려가보자'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거의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조금 전 20층 높이에서 내려다봤을 때 느껴진 아찔한 공포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사업장 노무담당자들과 통화를 자주 한다. 거짓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2년 동안 내가 만난 사업장 담당자들은 모두 예의가 바르셨다. 가끔 주변 동료들이 이상한 사업장 담당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희한하게도 난 없었다.


"00 사업장이죠? 00 근로자의 급여명세서가 없어서 추가요청 드립니다."

반말하는 담당자: "아 그 김 00 이가  어? 서류를 뭐 냈는데? 어? 잘못된 거 있어 어?" (담당자는 70세이셨다.)

김주무관의 뇌의 반응은 띠로리였다. 하지만 입에선 " 네에, 급여명세서를 팩스"

반말하는 담당자: 바로 말을 끊으시더니 "우리가 한 명씩 안 나와 어?, 전체 다 나오는데 어? 뭐 어떻게 해줘. 어?"

모든 단어와 단어 사이에는 "어?"라는 연결어가 있었다. 뉘앙스상 의미를 분석해 보면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확인" 같았다. 나의 대답을 원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5분 만에 개인 급여명세서가 팩스로 왔다. 이해는 빠르셨다. 근로계약서와 내용이 다른 부분이 많았다.

"00 사업장이죠. 방금 전화드린 고용센터 000주무관입니다. 두 서류가 내용이 좀 달라서 확인하려고 연락했습니다."

반말하는 담당자: "어 그거, 어? 요즘에 육아휴직 가면 어? 퇴직금도 적립해야 하고 그러잖아. 어? 그래서 다시 어? 사업장 부담 안 가게 어? 계약서 작성한 거야 어? 김 00도 합의했고 어?"

그 이후로 길게  자기 확신용 "어?"를 반복에 반복을 하면서 설명을 하셨다. 오랜 연륜에서 오는 것인지 서류상 노동법에 문제가 될만한 것은 없었다.



1350 콜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상담사분은 난감해하시며 떠는 목소리였다.

"민원인분이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했는데 지금 당장 돈을 달라고 하셔서요. 저희도 처리기한 말씀 드렸지만 담당자 연결을 요청해서요, 연결해도 될까요?"


김주무관은 '오랜만에 또 올게 왔군'생각으로 "넵 연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돈을 빨리 달라는 민원인: "내가 어제 신청했는데 왜 오늘 돈을 안 줘요. 그렇게 일이 많아요. 한번 물어볼게요. 뭘 검토하고 뭘 확인하는지 상세히 말해봐요."


화난 민원인은 늘 무섭다. 김주무관 : "저희가 통상임금 조사를 "

바로 말을 끊으면서 돈을 빨리 달라는 민원인: "내가 다 아는 데 길게 말할 필요 없고, 통상 주는 거 그게 통상임금이고, 그깟 백만 원 주면서 하루 만에 돈 안 줄 거면서 육아휴직은 어떻게 하라는 건데요? 00시에 육아휴직급여 신청하는 사람 많아요? 그 일을 몇 명이 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면 공무원들이 건의를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다시 원점으로 반복하는 돈을 빨리 달라는 민원인: "그러니까 무슨 조사를 한다고요? 아니 내가 이해가 안 돼서 그 쉬운 일을 뭐 할 게 있다고?"


답을 하려는 김주무관: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

역시나 바로 말을 끊어 버리는 돈을 빨리 달라는 민원인: "내가 다 안 다니까 그 일 쉬운 거, 왜 늦게 주는데요? 왜 바로 안 주는데요? 이래서 육아휴직을 왜 하래요?"


들으면서 알게 됐는데 결국 김주무관의 답을 원하는 질문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답하지 않았다.


민원인이 혼자 묻고 혼자 답했다. 그렇게 7분 정도 지나니 느낌상 그분도 끊고 싶었는지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돈을 빨리 달라는 민원인: "설에 나와서 일해요?"

이번에는 김주무관의 답을 기다리셨다. "넵 나와서 일합니다."(4일 내내는 아니지만 이틀은 나올 생각이었다.)

그제야 돈을 빨리 달라는 민원인: "미안합니다. 그러면 기다릴게요."하고 끊었다.

이것도 띠로리다


 


동료 주무관에게 열심히 카톡메시지를 날렸다.

 <나 오늘 이런 날이었다고.>

이 날따라 친한 한 명은 병가였고 다른 한 명은 속눈썹 펌을 하러 갔다.

병가를 간 동료 샘: "와 돈을 맡겨놨남? 샘 개진상 잊어버리고 설 전에 액땜했다고 생각해요."

속눈썸 펌을 하러 간 동료 샘: "속눈썹 펌을 해요. 기분이 업돼요."


신기하게 그 말들이 위로가 됐다. 그리고 신랑에게 말했다. "나 오늘 치킨 시킬래"

치킨에 시원한 화이트 와인 한 잔 마시니 괜찮아졌다.

적들아 이번에도 '김주무관 우울하게 만들기 미션'은 실패했다. 안녕, 잘 돌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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