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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계약직입니다만

어차피 인간의 인생도 한 철 계약직 아니던가요

by Ellie


여름이란 계절의 경계는 흐릿하다. 누군가 물 묻은 손끝으로 문질러 놓은 듯이. 제멋대로 번져있고, 불투명하다. 그래서 좋았다. 축축이 젖어든 우리네 감성 위로 푸른 물감 몇 방울을 툭, 툭, 떨어뜨려 주세요. 무성의할수록 좋아요. 그리고 잠시 물감이 어떤 형상을 그려가는지 가만 바라봐 주세요. 변칙적으로,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여기저기를 침범하고 제 멋대로 넘어들 거예요. 종 잡을 수 없는 청춘의 설렘처럼. 경계도 없이. 마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분명 여름은 내게 그런 계절이었다. 짙어지는 녹음은 다가올 결실의 예고였고, 뿌옇게 김이 서린 창문은 미지를 향한 설렘의 징조였다. 그러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를수록 감성에 녹이 슬어 버린 건지, 아니면 현실에 부대끼는 살갗이 더 얇아져 버린 건지. 모든 것이 점점 빛바래 갔다. 좀 더 정확히는 기대와 설렘이 두려움과 막막함이란 다른 형용사로 딱딱하게 변해갔다.


뭐가 달라졌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작품의 장르가 아예 바뀌어 있었다. 아직 청춘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까 싶은 30대가 되어 있었고, 내가 바라보던 세상은 감상적인 수채화가 아니라 캔버스 위에 흩뿌린 액션 페인팅이 되어 있었다.

작품의 제목은 '현실'. 나는 기형도의 시에 등장하는 들개처럼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기웃거렸고, 그 뒤로 길게 이어진 것은 어디로 향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어지러이 뒤섞인 발자국들 뿐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의 짧은 회사 경력, 그 가운데를 분절시키고 들어선 창작 활동 기간 그리고 다시 회사로 이어지는 파편들.


조각났다. 산산이. 발 밑을 어지러이 수놓은 파편들은 내가 부서졌다는 증거였다. 나는 말없이 바닥 위로 쭈그려 앉고 맨 손으로 슥슥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파편을 모아야 했다. 어떻게든 얼기설기 끼워 맞춰서라도 그럴싸한 형색을 갖춰야 했다.


그렇게 이어 붙인 이력서로 몇 년 만에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한 외국계의 계약직 자리 하나. 다시는 회사라는 곳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호기롭게 박차고 나온 곳으로 궁색하게 돌아간 참이었다. 꼬깃꼬깃한 이력서를 최대한 빳빳하게 펴고, 분절된 경력들을 그럴싸해 보이도록 이어 붙여서.


오래 신지 않아 먼지 더께가 앉은 구두를 신고 들어섰던 미팅룸. 나는 웃고 있었던가? 면접관으로 들어왔던 분들 중 한 분이 왜 다시 회사로 돌아오려고 하느냐고 물었을 땐 뭐라고 대답했더라? 생활고 때문에요,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창작자로 먹고살려고 했는데 그거 여의치가 않아 져서요,라고도 말할 수 없었겠지. 그래서 나는 '다시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보고 싶어서요'라고 적당하게 격식을 갖춘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말이야 곧 잘하니까. 사회적 지능이 낮다고 생각했지만, 임기응변에 언변은 좋은 편이니까. 예전에 북토크도 했었고, 대학교 강단에도 서 봤었잖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쨌건 최대한 이 포지션에서 원하는 롤에 최적화된 사람이란 뉘앙스를 풍겼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저는 이 지금 이 자리가 다시 시작될 제 사회생활에 마중물 같은 존재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식의. 뭐 은행 대출 심사받는 자리도 아닌데 디딤돌 대출 설명서에서나 쓰여 있을 법한 소리를 가져다 붙였을까.


그때 면접관으로 들어왔던 분 중 한 분은 지금 내 상사가 되었다. 어떤 생각으로 나를 뽑으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면접에서 이빨을 잘 깐 거라고 생각했는데, 3개월이 지난 후 받은 Probation Evaluation 폼에선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매일 아침 약을 집어삼키며 출근했던 노고가 인정을 받은 것일까. 엑셀 시트 앞에서 허둥거리고 낯선 실무 용어 앞에서 버벅대고 조직이라는 거대한 유기체 앞에서 잔뜩 쫄아 있었는데. 중고 신입처럼 애매한 나잇대에 팀에 들어온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은 선임 앞에서 손에 땀을 쥐고, 실수할 때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던 나날들이었는데. 정규직도 아닌 임시라는 타이틀 앞에서 정신 바짝 차리려고 노력한 시간이 벌써 3개월이나 흘렀다니.


문득 양손을 내려다보니 여기저기 긁히고 깨진 상처투성이었다. 회색 시멘트 바닥에 수채화 물감 대신 번져 있는 것은 붉은 손바닥 자국들. 뾰족한 파편들을 어지간히 세게 그러쥐었던 모양이었다. 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본다.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 저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 아직도 번져 있는 미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모든 것이 애매했다. 차라리 불행도 계절이면 좋겠다. 그럼 지나가기라도 할 텐데. 만약 계절이 아니라 기후면 어쩌나.


'방향성을 잃었어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전 회의에서 다른 팀원이 내뱉은 말. HQ와 한국 지사 간 이해 차이에서 온 방향성에 대한 불만 토로였지만, 가만히 앉아 잠자코 듣고 있던 내가 덜컥 그 말에 얻어맞고 말았다. 저거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아니지. 특정 SKU에 대한 말이지. 근데 왜 뒤통수가 화끈거리는지. 그리고 얼마 지나자, 부럽다는 생각이 불쑥 치솟았다. 회사 재고는 소진 방향성을 잃으면 각 팀에서 발 벗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라도 하지. 내 인생은? 의지할 가족도, 마음 터 놓을 누군가도 없는 나는? 오롯이 홀로 끌어안고 끙끙거려야 하는데.


그러다 문득 떠오른 최승자의 시, ‘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한 생이 일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가벼울 일인가. 이렇게 묵직할 일인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틀린 말도 아니더라. 어차피 인간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계약직 아니던가? 인생이란 것이 그렇잖나. 계약 시작일은 랜덤에 만료일은 미기재인, 어딘가 미심쩍은 계약서에 사인한 임시 포지션 같은 거. 이 도시가, 이 지구가 거대한 비정규직 사무실에 다름이 없는데. 그 안에서 명확성과 불명확성을 가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당신이, 내가, 떨어지는 유성처럼 찰나에 반짝이며 흘러가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철 지난 루머에 불과한 것을.


루머다.

루머의 루머.

나는 지구에 떠도는 한낱 뜬소문.



꽉 찬 계절이 허물어지듯,

장난처럼 나의 절망도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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