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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Aug 11. 2024

혼나기 싫어요(2)


울었던 것 같기도 해.

이날을 기억하는 나는 그날의 학교 복도 구석에 서 있어. 소란스러운 무리에서 두 세 걸음 떨어져서 지우개 털이에 올라선 나를,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흘깃 쳐다보곤 바삐 걸음을 옮기는 선생님들을 골고루 천천히 지켜보고 있지. 지우개털이 위에 선 내가 소매로 얼굴을 문지르는 모습을, 아이들의 눈에 한층 호기심이 어리는 모습을. 마치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이 기억이 내 기억이 아니기를 바라기 때문일까.

실은 너무 괴로우니까. 사건의 주인공으로서도 사건의 방관자로서도 관찰자로서도 너무 아픈 기억이니까.

아.
다른 사람의 기억이었더라면.

아니.
그런 일은 누구의 기억이어서도 안 돼.

엄마에게 서운했어. 집에서만 혼내도 되는데 선생님에게까지 일러서 애들이 다 보는 앞에서 혼나게 만든 건 너무하다고. 그래도 단 한 번도 내가 혼나지 않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동생과 싸우기도 했고, 내 물건을 정리하지 않은 적도 많았으니까.

희수야, 난 그런 일을 겪고도 다음날 학교를 갔어. 어떻게 학교에 갈 수 있었을까? 나는 매번 혼날 짓을 하는 내가 어쩌다 보니 한 번 더, 다른 모양새로 혼이 난 거라고, 딱 그 수준에서 사건을 해석했어. 그러니 평소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들고 엄마에게 잘 다녀오겠다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고 걷고 길에서 만나는 친구에게 인사도 했겠지. 담임 선생님에게도. 그래, 담임이라는 그 사람에게까지 인사를 할 수 있었겠지.

열 살은 너무 어리잖아.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나를 구해주고 싶어.
너무 안쓰러워.
너무 안쓰러워.
너무 화가 나.

어떻게, 어떻게 고작 열 살인 아이에게 그럴 수가 있지?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이,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아이 마음을 산산조각 낼지도 모르는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산산조각 나지 않을 정도로 순진했기에 다행이지만.

아이가 받아온 ‘자라는 모습’을 클리어파일에 정리해 넣고 이끌리듯 오래된 내 앨범을 꺼냈어. 빛바래 누렇게 뜬 국민학교 통지표, 중고등학교 성적표, 상장, 수능수험표, 심지어 대학 성적표부터 임용시험 응시표까지 차곡차곡 꽂혀있는, 내가 교육기관을 거쳐온 생생한 흔적들이야. 참 열심히 다녔네. 열심히 지나왔네. 아픈 기억으로만 치부하기에 스스로에게 미안해질 만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훅훅 끼쳐오는 노릿한 세월 내음이 이 모든 게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해. 그래도 나는 두 손 묵직한 무게감을 핑계 대며 어떻게 잊냐고 자신에게 심술을 부려봐.
쪼그리고 앉아 열두 장의 통지표들을 읽기 시작했어. 통지표 표지에 있는 선생님들의 이름은 그리움, 원망, 망각을 불러일으켰지. 사람 이름은 부르기 위한 쓰임만 있는 건 아닌가 봐.
야릇하고 복잡한 마음들을 들숨과 날숨으로 담뿍 느끼고는 비밀문서를 대하듯 조심스레 '가정에서'를 읽기 시작했어.  기억이 지나치게 어두운 쪽으로 왜곡되었기를 바라면서. 단번에 어긋난 기대에 피식 웃음이 나고 내 의지에 상관없이 입가가 삐죽거렸어. 딱 울기 전처럼.

아빠는 딸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시종일관 언급하고 있었어. 궁서체를 닮은 유려한 글씨체는 반기를 들 엄두조차 못 내도록 신뢰감을 줬지. 선생님들은 학교에서와 다른 내 모습에 깜짝 놀라셨을까.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날 힐끗 보고는 두 얼굴의 아이구나, 하셨을까.


이 통지표들을 들고 어떻게 학교에 갔던 걸까, 나는.

엄마 아빠.

나를 조금 더 칭찬해 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나는 자신감 있는 아이로 더 밝게 더 훌륭하게 자랐을 거야.
엄마 아빠.

자꾸 나를 혼내고 나를 깎아내렸지. 덕분에 사람들 눈치 보면서 억지로 웃고 억지로 공부해야 하는 삶을 살아온 나를 봐.
마음 아파?
아픈 게 뭔지는 알아?
딸이 이렇게 말하니 기분 나빠?
어쩔 수 없어.
다 엄마 아빠 탓이야.

마흔이 넘은 내가 이렇게 따지고 있었어.
말을 잊고 나를 잊고 이젠 세상마저 잊어가는 아빠에게, 여전히 자신을 위해서만 우는 엄마에게.

여기까지.
따지는 것도 여기까지. 한 번쯤 쌓인 걸 쏟아낼 수는 있지. 쏟아낸 것들을 깔끔하게 사라지게 못한다는 것도 인정해.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궤변이야. 어떻게 마음을 비워. 마음은 마음인 그 자체인데. 마음을 다른 마음으로 서서히 바꿔가야 하는 거아. 체기 같은 원망은 부정하지 않을래. 원망은 내 날숨에 내 한숨에 조금씩 사라질 거야.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아이를, 그리고 내 주변의 아이들을 어린 시절의 나처럼 아프지 않게 하는 것. 그것뿐이야.

희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희수의 엄마는 희수에게 어떤 엄마였을까. 넉넉지 못한 집 자식으로 살았던 우리가 칭찬을 듬뿍 받을 수 있었을까. 빛났던 너와 나는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모자랄 아이였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진부해 보이는 말을 나는 굳게 믿어.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아이를 더 많이 칭찬해 줄 거야. 우리 엄마보다는 내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보고, 그중에서 칭찬할 거리를 찾아서 콕콕 집어내 이야기해 줄 거야.

아이가 춤출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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