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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Sep 08. 2024

까만 주름치마를 찾아서(2)


엄마와 나는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집에서 꽤 먼 지하상가까지 갔어. 10대, 20대 젊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 거니는 지하상가엔 세련된 옷을 파는 옷집이 늘어서 있었지. 쇼윈도마다 기이한 몸매의 마네킹들이 기이한 자세로 최신 유행 옷을 입고 서 있었어. 점잖은 옷을 사기 힘들겠단 생각을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집 한 집 다 둘러봤지만 내가 찾는 치마를 찾을 수는 없었어. 차라리 천을 사서 직접 만드는 게 빠를 정도로 지나치게 정직한 모양의 치마였으니까.


너무 걸은 탓인지 겨울인데도 이마에 땀이 맺히고 다리는 피곤하다 못해 저려왔어. 걷고 걸어 다다른 지하상가의 끝엔 화려함이 한결 걷힌 중년 여성용 옷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어. 기대도 않고 들어간 그곳에서 드디어 까만 주름치마를 찾아냈어. 치마를 들고 안도하는 나를 보고 50대 즈음으로 보이는 옷가게 아줌마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어.

“국민학교 졸업식에.. 네가 이걸 입는다고?”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아줌마의 눈빛을 보고 알았어야 했는데. 까만 주름치마가 내 무지와 고집의 산물이었음을.


엄마는 왜 몰랐을까. 국민학생이 졸업식에 그런 옷을 굳이 입지 않다고 된다는 걸. 새까만 재킷과 치마는 지나치다 못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다는 걸.

엄마가 미용실 손님과 나눈 대화들은 다 뭐였지? 혹독한 시집살이, 새로 연 채소가게, 흔해빠진 동네 어느 부부의 다툼 등등 온갖 세상 이야기란 이야기는 다 나누는 것 같더니, 세상사 다 아는 것처럼 말하더니 왜, 왜 국민학교 졸업생의 옷차림에 대해서는 몰랐던 거지.


이젠 그 이유를 알아. 엄마는 정말 몰랐던 거야. 엄마에게 손님들과의 대화는 일의 일부였을 뿐이었어. 엄마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고, 새로 문을 연 가게가 있든 없든 상관없을 만큼 가장 싼 채소가게를 알고 있었고, 어느 집에도 지지 않을 부부싸움을 하며 살았으니까. 그런 엄마가 그렇게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을 리 없잖아. 진심을 담아 말했다면 그렇게 웃을 수 있었을 리 없지. 울다 못해 바닥을 치며 주저앉았겠지.


엄마는 세상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거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틈이 없었지. 세상 물정을 몰랐기에 어린 딸의 요구 사항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줄도 모르고 따라나섰던 거지. 어린 딸은 엄마가 따라와 주니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었던 것이고. 엄마는 그런 딸을 믿었던 것이고. 그러고 보면 서로가 서로를 믿은 눈물겨운 순간이었어.

까만 재킷과 까만 치마는 꽤 비쌌던 걸로 기억해. 중년 여성용 옷집에서 산 치마는 화장품 방판 아줌마가 입을 법한 스타일이었고, 까만 재킷도 국민학교 6학년 아이가 입기에 어색할 정도로 어깨가 컸지만 두 가지를 한꺼번에 사야 싸게 준다는 아줌마 말에 덜렁 사버렸어.

두툼하게 부푼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오던 길.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던 엄마와 나.  


그 둘의 곁에 지금의 내가 갈 수 있다면.


마흔도 되지 않았던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던 엄마, 겨우 열세 살이었던 나. 모녀의 상기된 이마에 맺힌 엷은 땀기운을 닦아줄 수 있다면, 두 사람의 고단한 다리를 주물러 줄 수 있다면.

졸업식 당일에서야 엄마를 괜히 고생시켰다는 걸 알게 될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졸업 사진을 볼 때마다 죄책감과 미안함에 시달릴 나를 안아줄 수 있다면.


까만 재킷과 까만 주름치마는 엄마와 내겐 다른 성격으로 기억되고 있어. 마치 다른 평행 우주에서 일어난 일처럼. 엄마에겐 필요한 옷을 사러 나갔고 원하는 옷을 겨우 얻은 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어쩌면 엄마는 지금 기억조차 못할지도 몰라.

나는 10년, 20년,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며 그 기억에서 새로이 배어 나오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어. 10년이 지나서는 엄마가 엄마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음을, 20년이 지나서는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을.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진 나는 그때의 엄마도, 그때의 나도 사랑하게 되었어. 순수해마지 않았던 미숙했던 두 사람의 고단한 외출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부끄러운 믿음을 가졌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어. 그런 나를 따라와 준 엄마가 있었기에, 엄마의 마음을 새삼 고마워한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스펙트럼처럼 서서히 이어지지. 열세 살의 나에게도 시간을 거슬러 지금의 내 모습이 스며들어 있을 거야. 그렇게 우린 이어져 있어.


오십이 넘을, 육십이 넘을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 안에 어떤 모습으로 스며들어 있을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몇 십 년 뒤의 나에게 어떻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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