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무렵이었을 거야.
쉬는 시간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는데 딱, 소리와 동시에 눈앞이 번쩍했어. 처음 느껴보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처음 느껴보는 신체적 고통이었지. 뒤통수가 움푹 파여나간 듯 예리한 통증이 머리 깊은 곳으로 순식간에 스며들었어. 1초 남짓 했던 그 찰나. 고개를 돌린 내 앞에 잘 모르는 선생님이 서있었어. 테가 없는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이마 주름엔 약간의 땀기운이 서린 모습으로. 며칠 면도를 거른 듯한 턱에 삐죽삐죽 솟은 수염이 성인 남자라는 걸 확실하게 느끼게 했어. 눈물이 핑 도는 내 눈을 그 선생님이 바라보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초. 다 해봤자 3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몇 십 년 동안 기억될 선생님의 외모를 눈에 담았어. 담고 싶지 않았지. 담고 싶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동요 없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읊조렸어.
"어, 아니네."
그러곤 내 머리를 때린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멀뚱히 선 나를 유유히 앞질러 걸어갔어. 내 이름조차 묻지 않았지. 시선만 좀 더 내리면 볼 수 있었던 내 명찰도 보지 않았지. 나는 그 선생님 귀밑에 난 새치까지 기억나는데.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은 허무함에 가까웠어. 저 사람은 이소영이라는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겠구나, 이 순간을 내일이 오기 전에 깡그리 잊겠구나.
그래서 서글펐어.
모범생이라 자부했던 내 역사에 오점을 남긴 사람. 실수라 해도, 아무리 실수라 해도 신호등 언니들과 같은 학생으로 날 봤다는 게 너무 억울했어. 내가 모범생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었는데. 한 번도 교칙을 어긴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은 도대체 나를 누구로 착각하고 때렸던 걸까. 우리 학교 학생들 뒷모습은 모두 비슷했을 텐데. 적어도 앞모습은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때리는 게 잘못 아닌가,
라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다행히 우리 여고에는 체벌을 하는 선생님이 없었던 것 같아. 선생님이 이리 오라면 이리 오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던 우리였으니 입댈 게 없었지. 학년에 한 두 명 있었던 눈에 띄는 아이들도 맞는 일은 없었어.
음, 내가 모르고 지나간 일들도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었어. 우린 일사불란한 개미들처럼 지냈으니. 크게 눈에 띄는 일 없이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모양새로 조용히.
희수가 다니던 중학교도 내가 다니던 곳처럼 체벌이 있었을까? 지금에 와서 내 또래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다들 체벌을 당했거나 본 경험이 있으니 희수 학교에도 아마 있었을 거야.
그때 우리에게 화풀이, 그래 화풀이라고 밖에는 도저히 표현할 다른 말을 찾을 수 없는 행동을 했던 선생님들은 단 한 번이라도 우리에게 미안함은 가져봤을지, 본인의 행동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지.
기대할 걸 기대하라고?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체벌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야. 지각을 하거나 숙제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교실 뒤에 서 있게 한다거나 청소를 하는 것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미숙한 아이들에게 신체적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교육적 방법 중 하나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타인의 몸에 고통을 주는 건 반대야.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은 반성보다는 반발심을, 지켜보는 이들에겐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니까. 그리고 오랫동안 그 불쾌함이 잊히지 않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사건의 불합리함을 알게 되니까. 체벌을 한 선생님의 나이 즈음이 되었을 땐 그 사람이 오로지 감정을 못 이겨 자신을 때렸다는 걸 더 확실히 깨닫게 되니까.
어려서 당하기만 한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게 되니까.
마음의 독소 같은 원망만 차오르게 되니까.
반성은 전혀 할 수 없으니까.
신호등 언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태은이는.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추풍낙엽처럼 흩날리던 지각생 아이들은.
다들 잘 지내고 있기를. 잘 지내고 있을 거야. 부당한 폭력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상대에게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부디, 부디 잘 지내고 있기를.
그들의 안위를 빌며,
귀밑 삐죽이 솟아 있던 새치를 떠올려. 호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던 손을 떠올려. 짙은 남색 재킷에 잡혔던 주름과 까만 바지를 입은 선생님의 뒷모습을 떠올려. 내가 서 있었던 곳에서 보이던 창밖 풍경과 그날의 온도, 복도의 소음을 떠올려.
아픈 머리를 문지를 생각조차 못하고 입을 헤 벌리고 서 있던 열다섯 무렵의 나를.
나의 안위를 빌며.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의 안위를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