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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Sep 22. 2024

날아가던 신호등(2)


중2 무렵이었을 거야.

쉬는 시간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는데 딱, 소리와 동시에 눈앞이 번쩍했어. 처음 느껴보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처음 느껴보는 신체적 고통이었지. 뒤통수가 움푹 파여나간 듯 예리한 통증이 머리 깊은 곳으로 순식간에 스며들었어. 1초 남짓 했던 그 찰나. 고개를 돌린 내 앞에 잘 모르는 선생님이 서있었어. 테가 없는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이마 주름엔 약간의 땀기운이 서린 모습으로. 며칠 면도를 거른 듯한 턱에 삐죽삐죽 솟은 수염이 성인 남자라는 걸 확실하게 느끼게 했어. 눈물이 핑 도는 내 눈을 그 선생님이 바라보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초. 다 해봤자 3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몇 십 년 동안 기억될 선생님의 외모를 눈에 담았어. 담고 싶지 않았지. 담고 싶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동요 없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읊조렸어.

"어, 아니네."

그러곤 내 머리를 때린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멀뚱히 선 나를 유유히 앞질러 걸어갔어. 내 이름조차 묻지 않았지. 시선만 좀 더 내리면 볼 수 있었던 내 명찰도 보지 않았지. 나는 그 선생님 귀밑에 난 새치까지 기억나는데.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은 허무함에 가까웠어. 저 사람은 이소영이라는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겠구나, 이 순간을 내일이 오기 전에 깡그리 잊겠구나.

그래서 서글펐어.


모범생이라 자부했던 내 역사에 오점을 남긴 사람. 실수라 해도, 아무리 실수라 해도 신호등 언니들과 같은 학생으로 날 봤다는 게 너무 억울했어. 내가 모범생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었는데. 한 번도 교칙을 어긴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은 도대체 나를 누구로 착각하고 때렸던 걸까. 우리 학교 학생들 뒷모습은 모두 비슷했을 텐데. 적어도 앞모습은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때리는 게 잘못 아닌가,

라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다행히 우리 여고에는 체벌을 하는 선생님이 없었던 것 같아. 선생님이 이리 오라면 이리 오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던 우리였으니 입댈 게 없었지. 학년에 한 두 명 있었던 눈에 띄는 아이들도 맞는 일은 없었어.

음, 내가 모르고 지나간 일들도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었어. 우린 일사불란한 개미들처럼 지냈으니. 크게 눈에 띄는 일 없이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모양새로 조용히.


희수가 다니던 중학교도 내가 다니던 곳처럼 체벌이 있었을까? 지금에 와서 내 또래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다들 체벌을 당했거나 본 경험이 있으니 희수 학교에도 아마 있었을 거야.

그때 우리에게 화풀이, 그래 화풀이라고 밖에는 도저히 표현할 다른 말을 찾을 수 없는 행동을 했던 선생님들은 단 한 번이라도 우리에게 미안함은 가져봤을지, 본인의 행동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지.

기대할 걸 기대하라고?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체벌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야. 지각을 하거나 숙제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교실 뒤에 서 있게 한다거나 청소를 하는 것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미숙한 아이들에게 신체적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교육적 방법 중 하나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타인의 몸에 고통을 주는 건 반대야.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은 반성보다는 반발심을, 지켜보는 이들에겐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니까. 그리고 오랫동안 그 불쾌함이 잊히지 않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사건의 불합리함을 알게 되니까. 체벌을 한 선생님의 나이 즈음이 되었을 땐 그 사람이 오로지 감정을 못 이겨 자신을 때렸다는 걸 더 확실히 깨닫게 되니까.

어려서 당하기만 한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게 되니까.

마음의 독소 같은 원망만 차오르게 되니까.

반성은 전혀 할 수 없으니까.


신호등 언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태은이는.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추풍낙엽처럼 흩날리던 지각생 아이들은.

다들 잘 지내고 있기를. 잘 지내고 있을 거야. 부당한 폭력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상대에게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부디, 부디 잘 지내고 있기를.


그들의 안위를 빌며,

귀밑 삐죽이 솟아 있던 새치를 떠올려. 호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던 손을 떠올려. 짙은 남색 재킷에 잡혔던 주름과 까만 바지를 입은 선생님의 뒷모습을 떠올려. 내가 서 있었던 곳에서 보이던 창밖 풍경과 그날의 온도, 복도의 소음을 떠올려.

아픈 머리를 문지를 생각조차 못하고 입을 헤 벌리고 서 있던 열다섯 무렵의 나를.


나의 안위를 빌며.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의 안위를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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