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았다.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살고자 했기 때문에 뒤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내가 고통이 없는 병에 걸렸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지만 그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내 병을 알아차리고 죽은 동료와 친구가 떠올랐다.
워크숍 때 회사 동료 형이 그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는 모습을 봤다. 방금까지도 옆에서 웃고 떠들던 형이었는데, 누구도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차가워진 형의 몸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업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며, 서로 힘내자고 친구와 통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일주일 후, 그 친구의 번호로 부고 소식이 날아왔다. 충격이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들어가서도, 친구의 영정 사진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 가족들과의 인사에서 친구의 이야기를 하며 나는 억눌러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참, 친구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일주일 혹은 이주일 어쩌면 한 달에 한 번 전화하는 사이였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의지가 된다는 걸 알았다.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죽음 따위 별 거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은 모두 죽기 마련이니까, 그때까지 열심히 나를 갈고닦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멋지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함께 있는 가족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지금, 매일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늘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된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작은 부탁이라도, 밥 한 끼 차려주는 것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다음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내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오늘 꼭 해주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다.
긍정과 부정을 떠나, 나는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이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인류의 기술이 발전하고 의술이 발전해도 나는 죽는다. 내가 이 고통 없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안 순간부터, 나는 시간의 방향을 아내에게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