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글쓰기방에서 이 주제로 글을 써 보자는 제의가 있었는데 바로 써지지가 않았다. 왜냐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삶의 가치를 담아내야 하는 제법 묵직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거나 빨래를 개면서도 생각하게 되고, 걸으면서도 혼자 질문을 해 보았다. 책꽂이 앞에서 이리저리 눈길을 옮기다 보니 그림책 한 권이 눈에 띈다. 틱낫한 스님의 책을 읽다가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을 보고 감동을 받은 그림책 작가 존 무스가 만든 책이다. 그림책이라고는 하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니콜라이라는 소년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수채화 그림으로 편안하게 표현한 매우 철학적인 작품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니콜라이에게는 세 가지 질문이 있다.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니콜라이의 친구들인 왜가리 소냐, 원숭이 고골리, 개 푸슈킨이 이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해 보지만, 니콜라이는 만족스럽지가 않다. 그래서 깊은 산속에 사는 현명한 거북이 레오를 찾아간다. 마치 <쿵푸 팬터>의 우그웨이 대사부와 같은 모습인 레오는 대답 대신 밭일을 하게 한다. 니콜라이는 레오와 함께 일을 하고 다친 판다들을 구하면서 자연스레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알게 된다.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라는 걸 말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결혼이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철부지 시절에 내린 선택이었지만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로맨틱 드라마였고, 열심히 사느라 늘 복닥거리는 친정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이었다. 가정의 주체가 되어 새롭게 우리의 세상을 꾸미는 행사였고, 미숙한 청년에서 어른으로 탈피하는 긴 여행의 시작이었다.
지난날의 인생 곡선을 그려볼 때 위아래로 파도를 타는 시기가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 곡선은 완만해졌다. 열등감으로 힘들었던 검은색 시기는 연한 회색으로 바래졌고, 성장을 위해 몸부림치던 푸르다 못해 시린 초록색은 아쉬움의 연두색으로 희석되었다. 이 모든 변화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아내와 며느리, 엄마로 걸어온 시간들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자도 남자도 아닌 한 사람으로서 살아내고픈 고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감사하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남편과 두 딸이다. 연애할 때도 그랬고 입덧으로 말라갈 때도, 아이들 키우면서 힘들었던 시간에도, 지금도 내 생각엔 남편만큼 나를 이해하고 잘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 남편을 난 아주 가끔 존경한다. 우리 딸들도 마찬가지다. 얘들이 깔깔대며 웃는 소리를 들으면 내 몸의 세포가 더 젊어지고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어젯밤에도 도란도란 들려오는 자매의 대화에 행복해서 혼자 슬그머니 웃었다.
울 친정 부모님은 고집 센 엄마와 고지식한 아부지가 늘 티격태격하면서 사셨기에 대학을 가면서 기숙사 짐을 쌀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결혼 후에 시댁에서 잠을 자다 아침 6시에 문득 눈을 떴는데, 시어른들은 며느리가 깰까 봐 안방 침대맡에 앉아 조용하고 다정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시는 게 아닌가? 문화적 충격이었다. 물론 친정 부모님처럼 사교적이지도 않고 형제간에 교류도 거의 없어 융통성이 부족하신 분들이지만,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나에게는 그 아침의 다정한 대화가 참 마음에 들었더랬다. 지금의 우리 가정도 그게 가능하다. <비긴 어게인 2>를 틀어 놓고 식사를 하면서 헨리가 어떠니, 수현이가 어떠니 하면서 잔잔하게 웃으며 식사를 하는 우리 네 식구.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내가 태어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나에게는 두 개의 신앙 배경이 있다. 어린 시절의 나를 키워준 불교와 어른이 된 나를 이끌어주는 기독교. 얼마만큼의 교집합과 여집합인지 가끔 헷갈리고, 어느 것이 전체집합이고 부분집합인지 바뀔 때가 있지만... 나의 정체성은 이 둘 사이에서의 줄다리기이고 진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나를 보면 신앙의 조기교육이 중요하긴 한 것 같다. 방황하던 휴학생이 안식을 얻기 위해 기어들어간 곳은 한때 외갓집이었던 산사였고, 어린 시절 형성된 대상관계 내적표상도 역시 그쪽 분이다. 어릴 때의 그분들은 웅장함과 외로움, 비움과 동시에 텅 빈 충만을 가르쳐주었고, 결혼 후 선택한 이쪽 분들은 사랑과 나눔, 기도와 실천을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걷는 이 길은 양쪽 분들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나 난 Side가 좋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내가 신앙의 길에 몰입하는데 방해꾼은 새벽 기도다. 생각해 보라. 저쪽 분들은 새벽 3시 반의 백팔배도 힘든데 어두컴컴한 마당의 탑을 돌고 참선과 삼천 배를 한다. 자발적인 채식도 필요하다. 이쪽 분들은 5시 반 새벽 기도와 수요예배, 금요 철야예배, 주일예배, 저녁예배를 꼬박 다니기를 권장(!)하고 성경공부는 필수다. 어휴~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고, 타인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지금-이순간에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좋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쿵푸 팬더>에서 우그웨이 대사부가 한 말을 기억해 보자.
Yesterday is a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네이버블로그 : 모모의 달빛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