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수플레 팬케이크

삶의 멀미를 버티게 하는 진통제들

by 수수
수플레 팬케이크
재료 : 달걀, 거품기, 우유, 팬케이크 가루, 버터, 마요네즈, 설탕, 메이플 시럽
1 달걀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다.
2 흰자를 잠시 냉동실에 넣어둔다.
3 노른자를 한 스푼 정도 떠서 버린다.
4 노른자 한 알 당 팬케이크 가루 세 스푼, 설탕 한 스푼, 마요네즈 반 스푼을 넣고 고루 섞는다.
5 너무 묽어지지 않도록 우유를 한 스푼 정도만 넣는다.
6 흰자에 거품을 단단하게 내면서 설탕을 적당히 섞어준다.(본인 취향만큼 양 조절)
7 거품을 낸 흰자의 4분의 1 정도를 노른자에 마구 섞어준다.
8 섞은 노른자와 흰자를 남아 있는 거품 낸 흰자 4분의 3에 붓고 거품이 꺼지지 않도록 십자 모양 및 아래에서 위로 차분히 섞는다. (휘젓는 것 금지)
9 팬을 불에 올리고 버터 반 스푼 정도 녹여 팬에 두른다.
10 만들어 놓은 달걀 거품을 깊은 스푼으로 떠서 삼 층 정도 쌓는다.
11 물을 세 스푼 정도 근처에 뿌려주고 뚜껑을 살짝 열어 덮고 찐다.
12 두 개 이상 올리는 경우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간격을 둔다. (붙으면 잘라서 뒤집으면 되긴 함)
13 9분 정도 익힌 후 팬케이크 아랫부분에 뒤집개가 깨끗하게 들어가면 뒤집는다.
14 다시 물을 세 스푼 정도 근처에 뿌리고 뚜껑을 열어 덮은 후 7분 정도 기다린다.
15 팬에서 내리기 전에 버터를 엄지손톱만큼 올린 채 접시로 옮기면 좋다.
16 메이플 시럽을 뿌려 먹는다

사실 카페에서도 주문 후 30분 정도 걸리는

수플레 팬케이크는 그냥 팬케이크에 비하면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잘 부풀려졌다고 방심하면

불에서 내려놓자마자 금방 납작해져 버려 속상하다.


그래도 집에서 만드는 수플레 팬케이크를 고집하는 건

맛도 맛이지만 만드는 과정 곳곳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


몽실몽실한 구름 같은 달걀흰자에

샛노란 노른자 믹스를 섞을 때의 부드러운 느낌,

흰 구름이 점점 파스텔 톤 레몬빛으로 물들어가는 과정,

게다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

수플레 팬케이크가 빵실하게 부푸는 내내 버터향이,

테이블에서 메이플 시럽을 뿌려 먹는 동안

달달하고 따순 공기가 집안 곳곳을 순회한다.


무엇보다 수플레 팬케이크에서의 가장 큰 재미는

바로 하얗고 노랗고 귀여운 병아리 솜털 색감을 보는 것.

그건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고흐의 빛이니까.


나는 평생 동안 노란색에 철저히 길들여졌습니다.
나는 늙었고_yellow, 여전히 겁이 많습니다_yellow.
나는 이제 밀밭을 그릴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자연의 순리에 맞게 그것을 거둘 겁니다.
그리고 하늘에 대고 낮은_low 목소리로
외칠 겁니다_yell.
이 세상은 너무 밝다고!
오은 <너랑 나랑 노랑>
수플레 팬케이크로 유명한 카페! 물론 맛있었지만 예민한 코는 달걀 비린내를..

변변치 않은 가정용 팬 위에서 만드는 수플레 팬케이크는

사서 먹는 편리함과 비주얼에 미치지 못하고

부드러운 크림과 기간 한정 메뉴 같은 것도 없지만

촉감으로, 눈으로, 코로 만끽할 수 있는

쿠킹 테라피가 되어 준다.

이건 구매하기 쉽지 않은 경험이고 곧 행복이다.


따라서 현명한 소비자는 소유보다는
경험의 프레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에리히 프롬의 충고처럼 소유의 프레임보다
경험의 프레임이 삶의 질에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인철 <프레임>
루시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떨까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서

더 소중하게, 더 품격 있게 갖고 싶은 욕심이 있다.

사람을 대하든 동물을 대하든 식물을 대하든

어떤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하든지 간에

그 상황에 대해서 번거롭다고만 생각하면

삶은 버거워진다.

좀 더 선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맥락을 이어 보는 태도는

삶을 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상상도 좋지만 관심과 애정부터 줘라냥

동네에 빗자루만 파는 가게가 있다.

빗자루라는 물건이 일상적인 소모품도 아니고

특별한 사치품도 아닌데 장사가 될까 의문스러웠다.


게다가 가게가 위치한 곳은

상점가도 아니고, 큰 도로변도 아니다.

보통 맨션들과 평범한 가정 집들이 즐비한

거주지 블록 한 귀퉁이라서

재미 삼아, 구경 삼아 드나들기에 좀 부담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부지런하게 가게 문이 열려있지만

손님이 드나드는 걸 본 적도 없다.

내 삶도 겨우겨우 붙잡고 살면서

괜히 오지랖 넓게 걱정스럽다.

그때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거다.

주인이 부자여서 취미로 하는 가게 정도의 생각은

너무 유치하다.

좀 더 동경(도쿄)스럽게 동화적 판타지를 빌려본다.

마법사도 좋고 마녀도 좋다.

가게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한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학교 협찬 가게는 아닐까? 출처는 @soukoubroom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는 건

어린 시절부터의 습관이었다.

하굣길을 같이 하는 친구나 학원 친구, 교회 친구들에게

학교 괴담이나 빨간 마스크 같은 소문을 듣고 또 전하며

작은 시절을 통과한 후의 나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 상황들은 전부 이야기로 만들었다.

모든 것에 사연이 있다는 것이 서사의 중심이 되고

내가 이해한 캐릭터의 입체적인 성격을 중심으로

앞뒤 전후 사정을 상상하여 맞추다 보면

어느새 이해할만한 이야기가 된다.


당연히 내 삶에서도 이야기는 중요했다.
버티기 어려운 현실을 모른 척 버려두고

시간의 풍화작용에 쓸려가기를 기다려도 봤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삶도 어쨌든 내 삶이고 나여서

그렇게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단어와 문장을 꿰어 낸 글에 기대

몇 번이나 생의 언덕을 잘 넘어왔다.

그러니까 내 인생 자체도

세헤라자데처럼 이야기로 구원받은 셈이다.

상상은 반짝

머리가 자주 아팠던 나는

어느 날 진통제를 삼키면서 생각했다.

두통은 삶의 멀미 같은 건 아닐까.

그 단상을 당시 싸이어리(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옮기면서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글을 쓰면서

덧붙은 서글픈 생각.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괜찮아지는,

나를 위한 글짓기.. 에서 언제 벗어나려나.


하지만 내 삶에서 작가가 되거나 되지 않거나 하는 건

생각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다만 글이, 문장이, 단어가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

잘 쓰는 글 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오늘도 나에게 글을 선물한다.

한 카페에서 만난 동화책이 나를 울리기도 했다 저 소녀 나 잖아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