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피넛버터쿠키

달콤한 영웅들

by 수수
피넛버터쿠키
재료 : 피넛버터, 설탕, 달걀
1 피넛버터와 설탕(피넛버터 양의 반)을 섞는다.
2 달걀을 풀어서 피넛버터가 질척이지 않을 정도만 넣고 섞는다
3 쿠킹 페이퍼에 한 숟가락씩 올린다.
4 예열한 오븐 토스터에 10분 굽고 식힌다.

회복 탄력성은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타고남이 대부분이라는 전문가들의 솔직한 뒷얘기.

팟캐스트에서 듣고 계속 마음 한쪽에 남아있었다.
(아! 정신과 의사들은 병의 약물 처방에 대해서는 전문가지만, 상담은 비전문가인 경우가 다수여서 전문 상담은 기대하지 말라는 것도)

회복 탄력성과 예민함은

같이 몰려다니는 폭력배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회복 탄력성이

좋은 사람들과 별로인 사람들과 안 좋은 사람들로

대충 세 부류 나눈다면 예민함은

안 예민한 사람 예민한 사람 무척 예민한 사람이 될까?

요즘은 그럴 일이 없다 보니 완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끄트머리에 있었다.

상실에 중독된 것처럼 회복 탄력성이랄 게 없었고

극도로 예민해서 모든 자극을 최소화했다.

매일의 삶에 멀미가 나서 두통에 시달리다 보니

자면서 꿈꾸는 경험이 깨어있는 현실 경험보다 더 많았다.


결국 지금의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변한 게 없는데

상황이 좋아진 것뿐이라는 생각에.. 좀 침울해졌다.

만약 상황이 다시 달라진다면

그러니까 지금의 삶을 상실하게 된다면.

내 망상은 기어이 비극으로 향한다.


주변에 적당히 예민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랬다면 좀 나았을까,

적당히 회복 탄력성도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역시 비교하거나 상대화하는 건

또 다른 우울을 부를 뿐 도움이 될 리 없다.


미주가 보기에 진희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는데
겉으로는 오히려 둔감해 보였다.
자기감정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나 예민한 사람이니까 너희가 조심해야 돼’라는 식이
아니라, 네 마음이 편하다면
내가 불편해져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예민함을 숨기려고 했다.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_고백>
침울한 게 아니라 졸린 거예요, 아니 그래서 침울해요

타고난 기질이란 절대적인 자신의 문제여서

다른 사람을 붙들고 기대한다고 해결될 리도 없다.

반복해서 서로를 지치게 하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의 자기 검열과 죄책감이 더해져

마음은 두 배, 세 배 더 무거워진다.

그렇다면 회복 탄력성이 타고나지 못한 사람은

마냥 스올(성경에서의 무덤)로 향해야만 할까?


모든 시 쓰기는 또한
자기 자신을 언어로 표상하여 타자로 만들어냄으로써
‘나’로부터 분리되는 일일 수 있다.
시 쓰기가 자기 해방과 구원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의미에서가 아니겠는가.
-
나는 나로부터 멀리 왔다는 생각
편의점의 불빛이 따뜻하게 빛날 때
새벽이 밀려왔다 이 거리는 얼굴을 바꾸고
아주 천천히 사라질 것이지만

나는 역시 나로부터 멀리 왔다는 생각
두 다리를 쭉 뻗고 자고 있겠지만
먼저 깨어난 사물들은 위험천만하게
나를 위협할 것이다 나는 모르는 척
몽롱하게 걸어 다닐 것이다

나는 나로부터 비롯되어 배가 고프고
편의점에 가서 우유를 사고 깡통을 사고
따뜻한 비닐에 먹을 것들을 담아
나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서
하나씩 까먹기 시작한다

지는 꽃에 대해서는 默默不答하고
단것부터 먹기 시작하겠지만
나는 종종 더 예뻐졌다는 생각
아주 몰라보게 예뻐졌다는 생각
이 거리는 아주 천천히 얼굴을 바꾸고

이근화 「따뜻한 비닐」 전문
-
상실의 대상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는 꽃에 대해서는 默默不答하고”).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우울하겠지만
(그래, 그럴 땐 꼭 “단것”을 챙겨 먹길),
그리고 어쩌면 “위험천만”하겠지만,
‘나’는 그런 ‘나’를 시로 썼으며
“나로부터”벗어나서 “멀리 왔다”.
틀림없이 ‘나’는 “아주 몰라보게 예뻐졌”을 것이다.
박진 <달아나는 텍스트들>


그럴 땐 제일 먼저 단것들을 챙겨 먹고

따듯한 이불속에 누워 귀여운 것들을 찾아보면서

몸속과 맘 속 가득 에너지를 보충한다.

따듯포근 이불, 이곳이 천국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복합적인 마음으로 나도 모를 내 마음을

책 속의 정확한 문장으로 읽어낸다.

내 안에 여러 모양의 나를

한 명, 한 명 떼어내면서 글로 정의하고 정리하다 보면

나는 나를 이해하게 된다.

그건 나를 가장 잘 위로하는 방법 중 하나다.


어떤 책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작품이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
신형철 [광주일보] <‘인식’이 곧 ‘위로’라는 것>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466002800579593223


여기 달콤한 영웅들을 몇 개 준비했으니

개인 취향껏 즐겨 주시길 바라며.

첫 번째 조용하고 쌉싸름하고 단것
두 번째 예쁘고 따듯하고 단것
세 번째 귀엽고 포근하고 단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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