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디아스포라
처음 내가 이 집에 왔을 때
내 방이라고 소개해준 방이 있었다.
그 방은 볕이 잘 들어서
가장 늦게까지 따듯하고 밝은 방이었다.
언젠가 내 공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 주었던 걸까?
나는 늘 다정한 마음들을 곧장 눈치채지 못하고
나중이 돼서야 종종걸음을 하고 쫓아간다.
이런 나에게 기록하는 습관은 참 다행이다.
지금 내 방은 그 밝은 방 하나뿐이 아니다.
맞은편에 있는 어두운 방도 반절은 내 겨울옷 차지고
옷장과 책장이 있는 방도 내 방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방에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과 부엌 중간에 있는
식탁에서 보내고 지금도 식탁에 기대 글을 쓰고 있다.
혼자만의 공간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편인 내가
외로움을 못 느끼거나 외로움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사실은 진짜 외톨이가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도 괜찮고 혼자서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
안정적인 관계는 내게 가장 큰 힘을 북돋아 준다.
디아스포라는 사랑의 미래다
어느 공동체, 이를테면 국가, 민족, 종교 등이나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정의, 개념, 논증 등
지금의 보통의 것 혹은 상식적인 것에 소속되는 것을
다 같이 포기하게 될 미래
누군가의 곁에만, 사랑에만 속하게 될 그때에는
아무도 낙오되지 않기를
_어느 날의 단상 1
그날도 저녁을 준비하면서 팟캐스트를 들었다.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주제였다
난 너무 쉽게도 그 논쟁에 극히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내용을 전부 다 듣고서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내 선택은 오롯이 내 죽음에 대한 입장이었다.
나 아닌 사람들과 여타 생명들이
고통을 피해 죽음을 택할 수도 있다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경우 나의 처지를 생각하니 역시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피하고 싶지만
당신은 비극에 맞서 생명에 책임과 최선을 다하기를,
늘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살아있어 주기를 바라는 난
여전히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동시에 나는 내 이기심에 좌절하지 않고자
이 마음들을 정당화하는 의식의 흐름으로 향했고
급작스럽지만 이거 사랑인데?라는 생각에 환승한다.
근거는 영성가 성 베르나르가 주장한 사랑의 단계.
'원초적인 사랑은 나를 위해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보다 높은 사랑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한다,
가장 성숙한 수준의 사랑은 하나님을 위해 나를 사랑한다'
죽음을 고민했는데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내 생명, 내 삶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오로지 나 자신으로만 향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전부 포기할 것처럼 위태롭지는 않았는지.
너를 위해 너를 사랑한다는 헌신과 희생들은
마음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피로로 쓸쓸하게 몸져눕지는 않았는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생명에 최선을 다하고, 내 삶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냘프고 약하게 느껴지지만
이상하게 아름답고 따듯하다.
‘나는 사랑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너를 살게 함으로써 나 역시 살 가치가 있게 되기 위해서.’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고통의 계절은 누구든 언제든 피하고 싶지만
그 자리에 사랑이 있다면 마주하고 버텨낼 용기가
보석처럼 기적처럼 생겨난다고 믿는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결국 다 지나가겠지만
사랑은 지나가지도 고여 있지도 않고 함께 생동한다.
사랑도 살아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나고,
최선을 다해 그 자신의 생명과 삶을 살아내고
견뎌낸다고 믿는다. 우리들 곁에서.
憧憬, 東京
동경은 동경일 때 동경이다
동경이 익숙함의 옷을 입으면 누추해져 버린다
동경은 친절하지만 다정하지 않아서
동경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삶은 결국 내 마음을
더 넓게, 더 깊이 움직이는 수고가 필요하다.
다정함의 세계가 동경이 아니라
지금, 여기라고 믿는다면
_어느 날의 단상 2
떨어진 꽃잎에 애정을 품는 나,
그림자를 잘 포착해 담아내는 오빠.
은은하게 닮아있는 우리 둘은
오늘 저녁도 다정한 식탁에 마주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