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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25. 2019

30대, 우린 어디쯤 왔을까@헤매이는 사람들

with 영화 라라랜드

ㅜㅜ 일이 손에 안 잡히네요.. 감사합니다아....♥


서른 즈음에 난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줄 알았다. 회사에서는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할 줄 알았고, 이쯤이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할 줄 알았다. 일도 사랑도 똑똑하게 잘 해내는 그런 멋있는 사람이 내가 될 줄 알았다.


흔들리는 미아. / 영화 라라랜드

근데 현실은 아니었다. 간신히 대학교에 입학하자 취업이 날 힘들게 했고, 취업하고 나니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나'를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면서 지금 다니는 회사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연애 경험이 쌓일수록, 또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될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연애들로 '이래서 나와는 맞지 않을 거야.'라는 판단이 더 빨라졌기 때문.


서른 즈음에 난, 

또 여전히 사춘기 때처럼 고민이 많고, 

흔들리고 있다. 

조금 더 무게감 있는 것들과 함께.


그 무렵 라라랜드를 보았다. 배우를 꿈꾸며 흔들리는 미아를. 그녀의 눈은 언제나 꿈을 생각하며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깊이 좌절했다. 그녀와 내가 오버랩됐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늘 꿈꿨던 분야의 일을 하고 있지만, 그 꿈의 일이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이 현실로 되었는데, 막상 몸으로 부딪치니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때의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난 무엇을 한 걸까. 무엇을 향해 달려온 걸까.'

해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것들 / 영화 라라랜드

그래서 분한 마음을 앉고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나섰다. 영어 회화도 하고, 요가도 해보고, 전시도 보고, 영화도 보고, 노래도 듣고, 책도 읽고, 어울리지도 않는 클라이밍도, 캠핑까지. 별의별 것들을 하고 다녔다. 해보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또 겪을 테니까.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하려 했다.


얼마나 오랜 기간 발버둥을 치고 주변에 징징댔는지. 보다 못한 내 친구는 처방전을 던져줬다. 글을 쓰는 동아리를 소개해줬고, 브런치 작가를 신청해보는 게 어떠냐며. 그렇게 우연히 생각하지도 못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서서히 많아지면서, 살면서 단 한 번도 꿈꾸지 않은 '작가'라는 직업을 다시 꿈꾸게 되었다. 조회 수가 몇천 명을 찍을 때면 회사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내 심장은 쿵쾅거렸으니까.


반짝이는 눈을 가진 미아처럼. 그 눈의 깊이만큼 더 좌절하는 미아처럼 말이다. 철들면 꿈이 바뀌어야 한다던데, 상대적으로 더 배고픈 직업을 난 꿈 꾸고 있다. 모든 걸 다 내던져도 꿈을 이룰까 말까 한 세상에 회사를 그만둘 만큼의 용기는 내게 없다. 꿈에 대한 확신도, 불안함도 다 앉을 만큼의 배짱이 아직 나에게는 없다. 그저 나의 마음이 어느 쪽에 더 기우는지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따르려 한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시선에 얽매여 내 꿈을 선택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서른 즈음에라도 남들이 아닌 오직 내 마음이 따르는 대로. 그 길로 나아가려 한다. 


누가 알까. 

지금 내가 회사에 다니며 작가를 꿈꾸는 이 순간이 

황홀한 그 무엇의 시작일지, 이루지 못할 한낱 꿈일지. 

나만의 색을 찾아서. / 영화 라라랜드

눈에 안 보이는 게 너무나도 많아 헛된 꿈같기도 하지만, 훗날 내 꿈을 이룬다면 지금 아무도 없는 내 방에서 스탠드 하나를 켜고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 이 순간은 나에게 너무도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중요한 건,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그 끝에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절대 알 수 없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길대로 걸었더니 퇴근만 기다리는 회사원이 되었다. 물론 회사원이 적성에 잘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아니다. 미아의 말처럼 지금까지 없던 나의 색깔들을 보려면 조금은 미쳐도 좋다. 지금 내게 처해있는 현실에서 다른 색깔을 보기 위한 노력을 해보는 것이다. 그게 나를 어디로 이끌지 모르니까. 어떤 색깔일지 너무도 궁금한 나는 퇴근 후에 영화를 보고, 날아다니는 생각들을 붙잡아 주말에는 글을 쓴다.


흔들리는 미아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배우의 꿈을 접고, 다른 길을 찾겠다고 하지만 남자 친구인 세바스찬은 그녀를 붙잡았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라며. 근데 난 세바스찬 같은 남자 친구도 없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만큼이나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은 

아직도, 사랑이다. 

그건 사랑, 오직 사랑 / 영화 라라랜드

서른 즈음이면 사랑에도 이별에도 조금 단단해질 줄 알았다. 근데 아직도 난 사람이 힘들고 사랑이 힘들다. 이전에는 내가 누구와 맞는지 몰라서 어려웠다면 지금은 누구와 맞는지 알겠어서 힘들다.


지금보다 조금 어렸을 때의 나는 자꾸만 엇갈리는 미아와 세바스찬 같은 연애를 했다. '나'의 상황이 불안해서 상대를 돌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상대 또한 마찬가지. 그래서 좀 더 애절하고, 아련하다. 아마도 그때 내가 지금의 상황이었더라면, 서로에게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했더라면, 힘들었던 시간에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면. 하는 후회들이 내 마음 한 켠 미련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다른 영화들의 주인공보다 조금 더 먹먹했던 것 같다. 함께 했으면 너무도 좋았을 순간에 그러지 못했으니까. 넉넉하지 못했고, 나의 앞날이 너무나도 불투명했지만 마음만은 넘치고 흘렀으니까.


서로를 지켜보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때. 너와 함께 하려면, 난 현실적인 고민들을 떨칠 수 없었고 그 '열심히' 때문에 너와의 시간을 잘 보내지도, 마음을 잘 헤아려 주지도 못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 보자.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니까. / 영화 라라랜드

서른 즈음에 사랑이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이전의 연애로 너무 많은 감정 소비를 했다. 미칠듯한 설렘과 함께 불안함과 그것으로 인해 오는 상처의 깊이, 또 이별을 이겨냈던 과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매번 '이번에는 다를 거야. 이제야 내 인연을 찾은 것 같아.' 하지만, 똑같은 만남과 이별의 과정을 겪으면서 또 연애 한다고 한들 똑같은 패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서른 즈음에 우리는 어디쯤 와있는 걸까. 우리의 꿈과 사랑은 지금 어디쯤 와있는 걸까.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괜찮지 않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저도 괜찮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싶어서. 


너무나 아픈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어른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메시지. 나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감추고 괜찮아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꾸역꾸역 돌아오는 월요일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고. 

눈에 안 보이는 게 너무 많더라도,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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