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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14. 2020

어차피 망할 거라면 @출판을 꿈꾸는 사람들

한동안 브런치 업로드가 정체되어 있었다.  2018년 4월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맥주 한 캔.. 아니 네 캔과 함께 일기 쓰듯 글을 썼었는데 벌써 2020년 1월이 되었다니. 꽤 끈질기게 한 가지 일을 했다는 것에 조금 신기하기는 하다. 업로드가 뜸했던 그간 난 아주 놀지는 않았고, 결과물 하나를 내기는 냈다.


바로 출판.


괄호 백 프로 사비. 백 프로 내 손으로. 책 디자인 처음 배워봄. 출판계에 아는 사람 없음. 유명인도 아님.


난 그냥 진짜 그냥 사람.


근데 어쩌다가 그냥 사람인 내가 책을 내게 되었을까?




#1

돌이켜 생각해보면 글쓰기의 모양만 바뀌었을 뿐, 계속하기는 했었다. 초등학교 때는 기계처럼 일기를 썼고 또 글짓기 숙제를 했고, 대학교 때는 과제를 했으니 글을 쓰기는 썼다. 일관성 있게 '진짜 하기 싫다'의 마음으로 썼다. 그러니까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그런 진짜 어쩔 수 없는 글쓰기. 그런 글쓰기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속되었다. 이력서를 쓸 때면 그 어쩔 수 없음이 최고조에 달했다. '진짜 살면서 이렇게까지 나를 속이면서 글을 써야 하나?' 싶을 정도로 나와는 다른 사람을 창조해냈다.


#2

그러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들이닥쳤다. 처음 겪는 감정이라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글쓰기'의 시작이 조금 달랐다. 누군가가 하라고 해서가 아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내뱉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게 글쓰기였다. 운동도, 색다른 취미를 가져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중 가장 내게 후련함을 주었던 시간이 바로 글 쓰는 시간이었다.

#3

 시간은 나를  쓰는 동아리에 들어가는 우연을 만들었고, 브런치를 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주었다. 브런치에 올린 글이 SNS에 노출될 때면 '대체   글이..?'라는 의문을 품게 했는데, 궁금한   참는 성격 탓에   이유를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진짜 친한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회사 퇴근 후 현직 작가님이 독립 책방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기는 했지만, 속이 후련하지는 않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은 몇몇 사람의 피드백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유추는 할 수 있다. 내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들면 안 팔릴 가능성이 크다 or 낮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일 뿐, 확신은 할 수 없다.


#4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 중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이 얼마나 될까. 또 그것이 밥벌이가 되는 사람은?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안다고. 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나도 안다. 근데 어차피 망할 거라면 빨리 그 '망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내 글은 대체 어느 정도지?'라는 생각보다는 나는 '이 정도였구나' 이제 마음 접고 회사 열심히 다니자. 글쓰기는 취미로만.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고 싶었다. 후회 없게.   

#5

이렇게 가볍게- 마음먹으니 책을 내는 속도가 좀 나기 시작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내 돈 주고 책을 내려니 정말 내 마음에 쏙 들게, 내 취향에 꼭 맞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 올라옴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한번 인쇄를 하고 나면 책 몇백 권과는 한동안은 함께해야 하는데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빨리' '' ' 정도면' '그냥' 마음으로   없었다.  브런치에 업로드한 글과 평소 기록해 두었던 짧은 글을 함께 엮어 정말 제 마음에 쏙 들 때까지 가다듬었다. 회사에서 남일 하듯 일하는  모습과 상반된 모습에 나조차도 놀랐지만, 회사가  평생을 책임져줄 것도 아닌걸. 나도  살길 찾아야지. 언제 구조조정당할지 모르는 인생. 나도 배신 때릴 준비를  해야겠다. 차이는  싫으니까.

#6

책 만드는 과정은 이 한 글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생각보다 아주 여러 단계가 있다. '이것만 하면 진짜 끝인 줄 알았는데..'의 연속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근데 이 과정들을 모두 적어 내려 갔다간 또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질 것 같아 모두 생략




책을 내게  이유를 구구절절 나열했지만, 개인적이고도 사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있었던 가장  원동력은 바로 '브런치 구독자' 분들.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았고, 무엇보다 힘이 되었다는 댓글이 달릴 때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두근거리고 그랬다. 내 일기 같은 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잠시라도 힘이 되었다면 정말 난 그걸로 만족했으니까. 외적으로 보이는 '나'라는 사람보다는 진짜 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2019년 연말에 입고 메일을 보냈고, 독립서점에 깔리기 시작한 지는 일주일 정도 된 것 같다. 현재까지 내 책을 팔아도 괜찮다는 곳은 총 36곳. 어제는 모르는 분이 내 책을 구매해 인스타그램에 올려주셨다.. 너무너무 감동이다. (좋아요.. 하트..했습니다.) 구독, 팔로우까지는 용기가 없어 못했어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  책이 진짜 망할지  망할지 온몸으로 느끼기만 하면 된다.


2020. 03. 베스트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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