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브런치 업로드가 정체되어 있었다. 2018년 4월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맥주 한 캔.. 아니 네 캔과 함께 일기 쓰듯 글을 썼었는데 벌써 2020년 1월이 되었다니. 꽤 끈질기게 한 가지 일을 했다는 것에 조금 신기하기는 하다. 업로드가 뜸했던 그간 난 아주 놀지는 않았고, 결과물 하나를 내기는 냈다.
바로 출판.
괄호 백 프로 사비. 백 프로 내 손으로. 책 디자인 처음 배워봄. 출판계에 아는 사람 없음. 유명인도 아님.
난 그냥 진짜 그냥 사람.
근데 어쩌다가 그냥 사람인 내가 책을 내게 되었을까?
#1
돌이켜 생각해보면 글쓰기의 모양만 바뀌었을 뿐, 계속하기는 했었다. 초등학교 때는 기계처럼 일기를 썼고 또 글짓기 숙제를 했고, 대학교 때는 과제를 했으니 글을 쓰기는 썼다. 일관성 있게 '진짜 하기 싫다'의 마음으로 썼다. 그러니까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그런 진짜 어쩔 수 없는 글쓰기. 그런 글쓰기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속되었다. 이력서를 쓸 때면 그 어쩔 수 없음이 최고조에 달했다. '진짜 살면서 이렇게까지 나를 속이면서 글을 써야 하나?' 싶을 정도로 나와는 다른 사람을 창조해냈다.
#2
그러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들이닥쳤다. 처음 겪는 감정이라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글쓰기'의 시작이 조금 달랐다. 누군가가 하라고 해서가 아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내뱉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게 글쓰기였다. 운동도, 색다른 취미를 가져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중 가장 내게 후련함을 주었던 시간이 바로 글 쓰는 시간이었다.
#3
그 시간은 나를 글 쓰는 동아리에 들어가는 우연을 만들었고, 브런치를 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브런치에 올린 글이 SNS에 노출될 때면 '대체 왜 이 글이..?'라는 의문을 품게 했는데,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 탓에 꼭 그 이유를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진짜 친한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회사 퇴근 후 현직 작가님이 독립 책방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기는 했지만, 속이 후련하지는 않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은 몇몇 사람의 피드백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유추는 할 수 있다. 내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들면 안 팔릴 가능성이 크다 or 낮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일 뿐, 확신은 할 수 없다.
#4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 중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이 얼마나 될까. 또 그것이 밥벌이가 되는 사람은?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안다고. 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나도 안다. 근데 어차피 망할 거라면 빨리 그 '망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내 글은 대체 어느 정도지?'라는 생각보다는 나는 '이 정도였구나' 이제 마음 접고 회사 열심히 다니자. 글쓰기는 취미로만.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고 싶었다. 후회 없게.
#5
이렇게 가볍게- 마음먹으니 책을 내는 속도가 좀 나기 시작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내 돈 주고 책을 내려니 정말 내 마음에 쏙 들게, 내 취향에 꼭 맞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 올라옴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한번 인쇄를 하고 나면 책 몇백 권과는 한동안은 함께해야 하는데 책을 만드는 그 모든 과정을 '빨리' '막' '이 정도면' '그냥'의 마음으로 할 수 없었다. 브런치에 업로드한 글과 평소 기록해 두었던 짧은 글을 함께 엮어 정말 제 마음에 쏙 들 때까지 가다듬었다. 회사에서 남일 하듯 일하는 내 모습과 상반된 모습에 나조차도 놀랐지만, 회사가 내 평생을 책임져줄 것도 아닌걸. 나도 내 살길 찾아야지. 언제 구조조정당할지 모르는 인생. 나도 배신 때릴 준비를 좀 해야겠다. 차이는 건 싫으니까.
#6
책 만드는 과정은 이 한 글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생각보다 아주 여러 단계가 있다. '이것만 하면 진짜 끝인 줄 알았는데..'의 연속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근데 이 과정들을 모두 적어 내려 갔다간 또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질 것 같아 모두 생략
책을 내게 된 이유를 구구절절 나열했지만, 개인적이고도 사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브런치 구독자' 분들.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았고, 무엇보다 힘이 되었다는 댓글이 달릴 때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두근거리고 그랬다. 내 일기 같은 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잠시라도 힘이 되었다면 정말 난 그걸로 만족했으니까. 외적으로 보이는 '나'라는 사람보다는 진짜 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2019년 연말에 입고 메일을 보냈고, 독립서점에 깔리기 시작한 지는 일주일 정도 된 것 같다. 현재까지 내 책을 팔아도 괜찮다는 곳은 총 36곳. 어제는 모르는 분이 내 책을 구매해 인스타그램에 올려주셨다.. 너무너무 감동이다. (좋아요.. 하트..했습니다.) 구독, 팔로우까지는 용기가 없어 못했어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난, 내 책이 진짜 망할지 안 망할지 온몸으로 느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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